A Time For Us [로미오와 쥴리엣 OST] - Kiri Te Kanawa, Sop
A Time For Us (로미오와 쥬리엣 OST) - Kiri Te Kanawa, Sop
A Time For Us someday
there'll be
When chains are torn by
courage born of a love
That's free
A time when dreams so long
denied can flourish
as we unveil the love we now
must hide
A Time For Us at last to
see a life worth while
for you and me
And with our love through tears
and thorns
We will endure
as we pass surely through every storm
A Time For Us someday
there'll be a new world
A world of shining hope
for you and me
ah~ah~ah~
A life worth while for you and me
And with our love through tears and thorns
We will endure
as we pass surely through every storm
A Time For Us someday there'll be
a new world
A world of shining hope
for you and me
A world of shining hope
for you and me
언젠가 우리 사랑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오면
자유로운 사랑으로
생겨난 용기로
우리를 묶어논 사슬이 풀려집니다.
그 때가 되면
오랫동안 제약받아 이룰 수 없었던 꿈들과
지금껏 숨겨와야만 했던 우리의 사랑을
베일을 걷어내고 다시 찾을겁니다.
마침내 우리의 사랑이
이루어질 그날이여
당신과 나를 위한 소중한 삶의 순간들
눈물과 고통으로 얼룩져 이룩한
우리들의 사랑으로
온갖 폭풍이 지날 때마다
우리는 분명히 견디어 낼겁니다.
우리에게 언젠가는
새로운 세상이 꼭 다가 올겁니다.
당신과 나에게
찬란한 희망의 세계가 열릴겁니다.
아~아~아~
그대와 나의 우리의 사랑은
눈물과 고통으로 이룩 한 것
온갖 폭풍이 몰아칠 때마다
우리는 분명히 견디어 낼겁니다.
우리들에게 언젠가는
새로운 세상이 올겁니다.
그대와 나에게는
찬란한 희망으로 가득한 세상이 될겁니다
그대와 나에게는
찬란한 희망으로 가득한 세상이 될겁니다
진실한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기도와 찬송 그리고 염주를 굴리며 주문을 외우는 따위의 짓은 이제 그만 두십시오! 문들이 모두 닫힌 이 외롭고 어두운 사원의 구석에서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를 경배하며 기도하고 있단 말인가요? 눈을 열고 바로 보십시오. 그대의 님[神]은 그대 눈 앞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님[神]은 단단한 땅을 갈고있는 농부가 있는 곳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돌을 깨고 있는 그곳에 계십니다. 그 분께서는 내리 쬐는 햇볕 속에서도 비가 쏟아질 때에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에 그 분의 옷은 먼지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대들도 자신이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그 가식의 옷을 벗어 던져버리고 더 나아가 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 더러운 먼지로 뒤덮인 이 낮은 땅으로 내려오십시오.
해탈이라구요? 해탈이 어떤 장소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의 님께서는 자신 스스로 창조의 속박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분께서는 우리 모두와 영원한 인연을 맺으셨습니다.
그대 자신의 해묵은 생각들 속에서 뛰쳐나오십시오. 그대 자신이 생각으로 만든 꽃들과 향기를 한 쪽으로 치우십시오. 그대의 옷이 누더기가 되고 얼룩으로 더렵혀진다 하더라도 님과 함께라면 거리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대의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는 수고로움 속에서 님을 만나고 님 곁에 서십시오.
전후의 이탈리아, 황폐한 도시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빈민, 이때의 영화를 네오 리얼리즘이라고 하여 어둡고 황폐한 이탈리아의 모습을 잔잔히 그려낸 영화들이 나왔습니다.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이라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무방비 도시>와 <전화의 저편> 그리고 비토리오 데 시카의 <움베르토 D>와 <자전거 도둑>에서 보여준 지독하게 가난한 서민들의 모습.
이 두 감독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40-50년대 영화는 다시 이탈리아의 삼각 거장으로 일컫는 루키노 비스콘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그리고 페데리코 펠리니로 이어졌습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중 <길>과 <8과 1/2>은 세계 영화사상 역대 최고걸작을 선정하는 목록에 단골로 상위권에 오르내리는 작품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난해한 <8과 1/2>보다는 친근하고 서민적인 영화 <길>이 훨씬 가까이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펠리니 감독은 길에서 우리나라의 신상옥 감독처럼 자신의 아내인 줄리에타 마시나를 주연으로 내세워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감독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는 것도 신상옥-최은희 부부와 닮은 점이고, 여배우가 썩 뛰어난 미모가 아니지만 감독의 영화에 잘 어울리는 배우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도 비슷합니다(그러나 최은희는 마시나보다 훨씬 미모였지요).
물론 줄리에타 마시나가 출연한 영화중에서는 펠리니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의 작품이 훨씬 많습니다. <카비리아의 밤>과 <영혼의 줄리에타> 등이 <길>외에 남편이 감독한 영화에 출연한 대표적 작품입니다.
[ 간략한 줄거리 ]
영화 <길>하면 떠오르는 것은 구슬프게 들려오던 니노 로타의 선율(노래 젤소미나)일 것입니다. <길>이라는 짧고 단순한 제목처럼 이 영화는 간단하고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잠파노와 젤소미나'라는 극중 이름도 너무나 유명해졌을 정도로 <길>은 대중들에게 높이 각인된 작품입니다. 오토바이로 포장수레를 끌고 다니며 쇠사슬을 끊는 묘기를 보여주면서 <길>에서 살아가는 잠파노(안소니 퀸)과 그를 따라다니며 조수역할을 하는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의 관계는 영화 속에서 굉장히 묘하고도 애매한 사이입니다.
둘은 표면적으로는 부부이지만 정상적인 부부관계처럼 보이지 않으며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부려먹고 말을 안 듣는다고 두들겨 패기도 합니다. 젤소미나는 그런 잠파노를 원망하며 떠나려고도 하지만,정작 떠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잠파노에게 의지하려고 합니다. 거칠고 투박한 잠파노, 바보같고 순종적인 젤소미나, 이러한 어울리지 않는 이 커플이 벌이는 생활은 굉장히 고달프고 공허합니다.
삶에 아무런 의미를 찾지 않으며 그래서 생각을 할 이유가 없이 살아가는 잠파노,자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괴로워하는 젤소미나,이런 두 사람 사이에 줄타기를 하는 어릿광대(리처드 베이스하트)의 출현은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이런 일상적인 삶을 깨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젤소미나는 광대를 따라 떠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잠파노에게 자신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어려움에 처한 잠파노의 곁을 지키게 됩니다. 젤소미나에게 단 한 번도 다정한 말을 해주지 않았던 잠파노... 결국 뜻하지 않은 살인으로 젤소미나와 헤어지게 된 잠파노....
<길>은 전형적인 라스트씬의 기억을 심어준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내내 애절한 사랑도,애증도,그리운 만남이나 이별도 없이 하녀를 부리듯 젤소미나를 대하는 잠파노의 모습은 바뀔 줄 모르는데...
두 사람이 헤어지고 몇 년이 흐른 뒤 우연히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잠파노가 취한 채 바닷가에서 울면서 절규하는 라스트 장면은 <길>이라는 영화를 관객들의 뇌리에 깊고 구슬프게 심어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안소니 퀸 ]
영화 속에서 거칠고 투박하고 단순 무식한 역할에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안소니 퀸은 배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더 이상 깊을 수 없는 연기를 통해 알려주었습니다.
영화 <길>에서는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로,<노틀담의 꼽추>에서는 꼽추 콰지모도로,<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천하의 자유인 조르바로,<25시>에서는 전쟁의 희생자로...
안소니 퀸은 1915년 4월 21일 멕시코 북부 치와와에서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인디언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안토니오 루돌포 옥사카 퀸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판초 비야의 혁명군에 가담했던 아버지는 혁명세력이 와해되자 가족들을 이끌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농업노동자로 전전하다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습니다.
퀸은 10세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소년 가장이 되어 구두닦이, 신문팔이, 공사장 심부름꾼, 내기 권투선수 등을 전전하며 가족들을 부양하는 힘겨운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남자와 재혼한 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할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 뒤는 더욱 더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 헤메었습니다.
*< 희랍인 조르바>에서
그는 돈받고 스파링 파트너를 해주는 권투선수였고,시멘트공이기도 했으며,동시에 전기 수리공이기도 했습니다. 고생 때문에 일찍 성숙한 얼굴을 가지게 된 퀸을 다른 거리소년들과 구분해주는 점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고 또한 건축물 스케치 대회에서 일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그 라이트는 퀸이 부정확한 발음을 고치고 오면 조수로 써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서 배우학원에 잡일을 해주는 조건으로 등록한 그는 연기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퀸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 본 여배우 매 웨스트에 의하여 18세에 <깨끗한 침대>라는 연극으로 무대에 처음 섰습니다. 이 연극에서 퀸은 육십을 넘은 노인역이 주어졌습니다.
* <노틀담의 꼽추>에서
이후 주연급은 아니었지만 그는 곧 거장 세실 B. 데밀(십계,삼손과 데릴라의 감독)의 <평원아>에 출연하게 됩니다. 리얼리티를 목숨처럼 여겼던 데밀은 순수한 샤이언족 인디언 배우를 찾고 있었숩니다. 아일랜드와 멕시코 원주민의 피가 섞여있는 퀸은 데밀을 찾아가 자신이 샤이언족이라고 구라를 쳤고 데밀은 이를 그대로 믿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퀸의 연기력을 영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데밀은 그를 퇴짜를 놓을려고 했었는데 이때 그를 살려준 것은 대배우 게리 쿠퍼였습니다. 쿠퍼는 “퀸이 수더분하고 착하게 생겼는데 한번 써 봅시다”해서 퀸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곳에서 퀸은 배우로서의 경력과 함께 첫 번째 아내이자 데밀의 수양딸인 캐서린 데밀을 한꺼번에 얻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데밀은 배우로서 그랬던 것처럼 사위로서의 퀸도 끝내 마음에 차지 않았다고 합니다.
* <25시>에서
하여튼 할리우드 실력자의 사위가 되어 차츰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넓혀가던 그는 1940년대 말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자, 동료를 빨갱이로 고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할리우드를 떠나 뉴욕의 연극무대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명장 엘리아 카잔의 눈에 띈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말론 브랜도가 맡았던 스탠리 코왈스키 역을 맡아 연기력을 인정받고, 이어서 1952년에는 카잔이 감독한 <혁명아 사파타>에 출연하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사파타(말론 브랜도)의 동생 역을 맡아 혁명의 조력자에서 술주정뱅이로 타락하는 연기로 1953년 아카데미상의 남우조연상을 받게됩니다.
*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에서
1954년에는 네오리얼리즘으로 세계 영화의 중심에 있던 이탈리아로 건너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에서 차력사 잠파노 역으로 출연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1956년에는<열정의 랩소디,일명 빈센트 반 고흐>에 고갱 역으로 8분간 출연, 주인공 고흐역의 커크 더글러스보다 빛나는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으며 두번째 아카데미상의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1964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희랍인 조르바>에서 그리스인 특유의 낙천성과 천하의 자유인으로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조르바 역을 맡아 절정의 연기를 보였습니다. 그는 "내가 바로 조르바"라고 말할 정도로 조르바라는 인물을 평생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으며, 1983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동명의 뮤지컬에서 다시 이 역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 <노인과 바다>에서
이후 <노트르담의 곱추>(1957),<나바론 요새>(1961),<바라바>(1962),<아라비아의 로렌스>(1962),<25시 The 25th Hour>(1967),<사막의 라이온>(1981) 등을 비롯하여 150편이 넘는 영화에서 거친 남성적 캐릭터로 선 굵은 연기를 보이면서 영화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노년에는 회화와 조각에 몰두하여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198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선포 4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에 그의 그림이 실렸으며, 1998년 말에는 조각가인 아들 로렌조와 함께 방한하여 예술의 전당에서 작품전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 <희랍인 조르바>에서
세명의 아내와 두명의 정부(情婦)로부터 열세명의 아이를 얻은 그는 “우굴거리는 자식들은 내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습니다. 80세가 넘은 나이로 47세 연하의 여비서 캐시 벤빈과 결혼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사생활이야 어쨌든 영화사적으로 수많은 걸작과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던 안소니 퀸은 2001년 3월 향년 86세의 나이로 미국 보스톤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 영화의 일부 씬
감독 /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음악 / 니노 로타 (Nino Rota ) 출연 / 쥴리에따 마씨나 (Giulietta Masina)
안소니 퀸 (Anthony Quinn)
리차드 베이스하트 (Richard Basehart)
길(La Strada, 1954) : 사랑 통한 구원, 길 위의 삶에 담아
페데리코 펠리니(Feferico Fellini)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는 네오리얼리즘에서 출발해서 자기 환상을 탐닉하다가 영화 인생을 끝마친 인물이다. 그는 영화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영화인 그런 삶을 살았는데, 이 점에서 그의 영화는 내적 경험을 중시하는 주관주의의 범주로 틀지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비평적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격정성과 인간 내면에 대한 관심이 뿜는 그의 영화의 매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길>은 펠리니의 명성을 국제적인 것으로 만든 초기 대표작의 하나다. 이 영화는 명백히 네오리얼리즘의 틀 안에 있던 자신의 영화를 시적이고 주관적인 세계로 열어놓은 전환점이며, 동시에 이탈리아 영화가 네오리얼리즘의 외적 현실에서 인간관계의 내적 현실로 초점을 이동하는 과도기의 징후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펠리니는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자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 <파이자>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 이력을 시작하여 1952년에 <백인 우두머리>로 감독이 되었다. 이 영화는 다음 작품 <이비텔로니>와 더불어 네오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되지만, <길>에서 볼 수 있는 주관성 또는 내적 접근의 특성은 이미 여기서부터 드러나 있었다고들 말한다.
펠리니는 떠돌이 서커스단과 대중적인 뮤직홀의 배우였고, 또 열렬한 칭송자였다. <길>에는 펠리니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인 서커스와 사랑을 통한 구원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얽혀 있다. <길>은 떠돌이 광대 잠파노와 백치 소녀 젤소미나, 줄광대 일 마토 사이의 단순한 이야기를 통해 바로 사랑을 통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주제는 길에 놓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제목대로 세 떠돌이의 삶의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잠파노(앤터니 퀸)는 삼륜차를 몰고 마을을 떠돌며 쇠사슬을 끊는 재주를 선보이는 광대이다. 젤소미나(주리에타 마시나)는 잠파노의 조수였던 언니가 길에서 죽은 뒤, 그 자리를 대신 채우기 위해 팔려온 백치 소녀이다. 그는 북을 치고 트럼펫을 불며 잠파노가 묘기를 부릴 때 조수 역할을 하는데, 사실은 우악스런 잠파노가 성욕을 배설하는 소유물이다. 그러나 그의 천진성과 헌신성은 서커스단에서 줄광대 일 마토(리처드 제이스하트)를 만나면서 인간적 가치를 드러낸다. 그는 잠파노와 젤소미나 사이의 촉매자가 되려 하지만, 야수성과 천진성이라는 운명적 비극의 관계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들의 길은 서로 결정적으로 어긋난다.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버린다. 5년 뒤, 잠파노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서야 잠파노는 그의 부재를 통해서 스스로의 고독을 깨닫는다.
<길>은 하층계급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가난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내부와 운명과 시간 사이의 비극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길>이 보여주는 예술성의 바닥에는 리얼리즘과 환상과 정신적 가치에 대한 추구가 한꺼번에 고여 있다. 동시에 이 영화에는 뜨내기로 추락한 미녀와 야수의 패러디가 있으며, 예수의 이미지인 ‘바보’와 성녀의 이미지인 ‘백치’ 소녀라는 종교적 알레고리가 숨어 있다.
오텔로 마르텔리의 카메라와 니노 로타의 음악은 이 영화가 고전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만약 앤터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나의 역을 제작자의 고집대로 실바나 망가노와 버트 랭커스터가 했더라면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펠리니가 이 영화를 그의 ‘영감의 원천’인 아내 마시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말은 기억할 만하다. 동시에 펠리니가 말하는 사랑을 통한 구원이 사실은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절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주관주의와 리얼리즘을 잇는 통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1952), 《셰인 Shane》(1953)과 함께 조지 스티븐스(George Stevens) 감독의 미국 3부작 가운데 하나로,
텍사스 석유왕 글렌 매카시(Glenn McCarthy)의 삶을 재구성한 에드너 퍼버(Edna Ferber)의 소설이 원작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록 허드슨(Rock Hudson), 제임스 딘(James Dean)이 주연을 맡았다.
광활한 텍사스 농장을 배경으로 2세대에 걸쳐 전개되는 농장주 일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자이안트'는 당시로서는 거액인 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한 1950년대식 블록버스터로, 1957년 제29회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영화 개봉을 2주일 앞두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제임스 딘의 유작이기도 하다.
세 주인공(제임스 딘, 록 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나이 든 모습들이 서툰 화장술 때문에 우습게 보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멋있다.
자이언트라는 제목에 걸맞게 오랫동안 영화 애호가들로 사랑받고 있는 영화이다
Giant / 하모니카연주
자이안트 (Giant) 서부영화음악 / M/V(ESC버튼 클릭후 플레이버튼 클릭)
George Stevens(1907-1975, 미국 CA)는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1951)>에 이어 이 영화를 포함하여 그의 3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셰인(Shane,1953)] 을 만들어 오면서도 동시에 Warner Brothers(WB)와 함께 공동으로 4년간 이 영화를 제작, 감독하였는데, 그동안 단돈 1달러의 생활비도 손에 쥐지 못하는 고생을 하면서도 뛰어난 기획력 덕분으로 그의 생애의 최고의 명작을 탄생 시키게 된다. 우선, 베테랑 대배우 없이 20대의 젊은 세 명의 주연배우들과 (23세의 Taylor, 24세의 Dean, 29세의 Hudson) 신인배우들 중심으로 캐스팅을 하였다는 자체가 당시로서는 크나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지만, 20대에서 부터 50대까지 노역분장을 하면서 Stevens의 깐깐한 연기지도를 믿고 잘 따라 주며 뛰어난 연기를 펼친 이들의 눈부신 노력으로 Stevens의 도박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Spencer Tracy의 연기를 모방하였다는 Rock Hudson의 노년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자세한 Hudson의 이야기는 Come September에서), 또 Jack Warner의 반대(두 시간짜리로 주장)를 무릅쓰고 3시간이 넘게 대작으로 한 편집(원래 10시간분량의 필름을 무려 일 년간이나 스티븐스가 직접 편집을 함) 역시 1939년의 <Gone With The Wind> 이후 최고의 대하 서사시라는 찬사와 함께 1957년도, 제29회, 미국 아카데미의 감독상도 받게 만든다(10개 부문 후보).
23세의 어린 나이에 벌써 두 번째로 출산을 하고 삼 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촬영에 임한 Elizabeth Taylor는 1950년대의 미국 남서부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의지가 강한 훼미니스트 역(Gone With The Wind의 비비안과 좋은 대조)으로 이 영화이후 최고의 할리우드 여배우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고, 또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를 한 신혼 4개월째의 Carroll Baker(엄마 역의 Taylor보다 한 살 더 많음)나 네 번째 영화로 출연을 한 어린 Dennis Hopper역시 모두 다 스타로 성장을 하게 되지만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자기가 맡은 역의 99%의 촬영을 마치고 전체 촬영마감 2주전(1955년 9월 30일. )에 비운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James Dean의 사망소식은 이 영화제작 당시의 최고의 화제가 되었고, 그래서 공교롭게도 이 작품을 촬영도 끝내기 전(개봉 약 일 년 전)부터 더욱 더 선전해주는 효과를 낳았다. George Stevens감독은 무슨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Porsche Spyder승용차를 사놓고 고속으로 경주를 즐기던 James Dean을 불러 앉혀놓고는 촬영 기간 중에는 절대로 그 차를 운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놓았다는데, 노역 회상 씬 한 장면의 촬영만을 남겨놓고 그만 방심을 한 사이에 자식과도 같은 Dean이 죽었다고, 한동안 무척이나 슬픔과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빅과 레슬리가 노역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은 그래서 제트가 나오질 않는 것으로 일부 개작을 하였고, 또 촬영후의 녹음작업도 제트가 술에 취해 호텔볼 룸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하는 대사 같은 부분들은 모두 대역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텍사스의 광대한 풍광이 촬영되었던 Marfa라는 소도시(당시 인구 약 5,000명)에 가면 먼지밖에 없던 황량한 벌판에 고딕양식으로 세워졌던 빅의 대저택 세트의 기둥들이 지금도 변색이 된 채, 보전되고 있다고 하고, 아직도 생존해있는 이 영화의 엑스트라를 하였던 주민들은 이 명작에 잠깐이나마 출연하였던 것을 온가족의 일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20세기 초반에서 중반으로 세월이 흘러가는 사이, 내 맘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한탄을 하는 주인공 빅의 회상처럼 정신없이 변해가던 시대상을 그린 이 대서사시가 개봉을 한지도 벌써 반세기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새 시대에도 세상은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그때보다 더욱 더 정신없이 막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몇 십 년 후, 이런 스타일로 시대변천을 그리는 영화가 또 나온다면 과연 요즈음은 어떻게 그릴까 새삼 궁금해지는데,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원작소설이 나올 때와 비교해 볼 때, 자이언트는 분명히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Is this the little girl I carried? Is this the little boy at play? I don't remember growing older When did they? When did she get to be a beauty? When did he grow to be so tall? Wasn't it yesterday when they wewe small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Swiftly flow the days Seedings turn overnight to sunflowers Blossoming even as we gaze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Swiftly flow the days One season following another Laden with happiness and tears
What words of wisdom can I give them? How can I help to ease their way? Now they must learn from one another Day by day They look so natural together Just like to newly weds should be Is there a canopy in store for me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Swiftly flow the days One season following another Laden with happiness and tears
태양은 뜨고 지고 내가 데려온 작은 소녀와 놀고 있는 작은 소년 그들이 노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늙어간다는 사실을 느낄 수 없어요. 언젠가 소녀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 소년은 멋진 신사가 되겠지요. 그들도 아주 작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태양은 뜨고 지고 태양은 뜨고 지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갑니다. 나무들은 해바라기를 따라 밤새도록 돌고 석양의 과일꽃들은 우리를 마주 봅니다. 태양은 뜨고 지고 태양은 뜨고 지고 한계절은 또 다른 계절로 바뀌어 행복과 눈물의 계절을 이룹니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현명한 말이 무얼까? 그들을 평탄한 길로 어떻게 이끌수 있을까? 지금 그들은 서로에게 배워야 하지요 하루 또 하루를... 새로운 짝인 그들은 모두가 보기에도 자연스러워요.
자연스러워요.
지붕 위에서연주하는 'Opening Title'
우크라이나 유태계 미국인인 아이작스턴이 바이올린 연주.
'Tradition'
유태인의 Tradition (전통)을 이어가려는 아버지와
시대의 변화를 원하는 세딸들의 결혼을 수용하는 과정.
'Matchmaker'
중매장이에게 멋진 남편을 꿈꾸는 소녀들의 환상을 노래는 사랑스런 장면.
'Sunrise Sunset'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린"
주연 ; Topol (토폴), Norma Crane (노마 크레인), Leonard Frey (레너드 프레이), Molly Picon (몰리 피콘) 감독 ; Norman Jewison (노만 쥬이슨) 음악 ; Jerry Bock + John Williams
유태인 아버지의 딸들에 대한 애틋한 가족 사랑, 유태인다운 자존감 & 애국심이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
노만 주어슨이 감독한 '지붕위의 바이올린'은 고향을 잃은 유대인들의 삶을 생생히 그린 영화다. 전통을 지키려 애쓰는 부모와 세 딸 사이의 갈등을 그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 테비에 가족이 다시금 유랑의 길을 떠날 때 그들의 뒷모습에 겹쳐 바이올린 선율 '선라이즈 선셋'이 애달프게 흐른다. 그래서일까, 유대인이라는 이미지는 왠지 모르게 바이올린과 겹쳐 떠오른다.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던 샤갈의 '마음의 고향'이며 저명한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의 한 사람이자 '지붕 위의 바이올린' 사운드트랙을 연주한 아이작 스턴(Isaac Stern)이 2010년 9월22일 81세를 일기로 뉴욕에서 사망했다. 그의 타계 소식은 적잖은 음악애호가들에게 여러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카라얀이나 번스타인 같은 20세기 거장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와는 또 다른 감회다.
스턴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동시에 미국 음악계를 움직이는 막후 실세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주자는 스턴에게 부탁하면 국적까지도 바꿀 수 있었다. 스턴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주인공처럼 옛 소련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한 유대인이다. 그는 독주곡에서 협주곡, 실내악, 현대음악 등 음악의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며 100종이 넘는 음반을 녹음했다.
케네디부터 클린턴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백악관 음악회에 스턴을 초청했다. 스턴은 냉전 시대에 소련과 중국에서 연주한 최초의 미국 음악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나치에 협력한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 등의 지휘자와는 절대 연주하지 않았으며 독일 팬들의 호소에도 죽는 날까지 독일 무대에 서지 않았다.
줄거리
1905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의 작은 마을 유태인 마을에서 우유가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테비에(하이만 투폴 분)는 가난한 삶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이 깊은 남자다. 그는 수다스런 아내 고르데와 다섯 명의 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장녀 짜이텔이 아버지와 상의도 없이 양복점 직공을 사랑한다며 그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전통을 존중하는 테비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딸 아이의 의지를 꺾을 수 없는 처지라 결혼을 승낙하고 만다. 그런데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으로 러시아 경관이 들이닥쳐 식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러시아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 우여곡절 끝에 장녀의 결혼을 마치니 이번에는 둘째 딸이 가난한 밀본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고, 또 셋째까지 러시아 청년과 사랑에 빠져서는 몰래 도망쳐버린다. 그러는 와중에도 러시아의 정국은 더욱 악화되고, 그 여파는 아나태프카의 마을에도 밀어닥친다. 유태인 퇴거명령이 떨어진 것. 결국 테비에를 비롯한 유태인들은 정든 땅을 버리고 미국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마을을 떠나간다.
클라이맥스에 나온 이 음악으로 추억의 명작이 되고 아낌없는 찬사를 받은 작품. 러시아 우쿠라이나의 아나테프카 마을 유태인 유목민들을 그린 쉘렘 스타인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각색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구시대적 가치를 고집하는 자긍심이 높지만 억압받는 아버지의 역할이 생명이다.
억압과 편견속에서도 긍지을 잃지 않는 유대인 일가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심도깊은 인간적인 감동을 자아낸 작품으로서 유태인으로 학대받던 멸시와 학대에 울던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힘찬 앞날을 기원하는 따뜻한 삶의 미소, 딸을 시집보내는 잔칫날이다.
유랑으로 心身이 지친 유태인들이지만 모두가 자기 일처럼 축하하러 모인다. 그러나 슬픔만은 떼놓고 올 수가 없다. 우울한 색조, 아버지(하이만 투폴 扮)는 바이올린을 들고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을 연주한다. 그 자리에 모여있던 유태인들이 하나 둘씩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합창으로 변한다. 억압과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잘 지켜낸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유대인은 원래 음악성이 뛰어난 민족이었다. 고대사는 기원전 700년경 아시리아의 왕 세나케리브가 유대왕 헤제키아에게 남녀 악사를 조공토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구약성서에는 소년 다윗이 하프를 연주해 사울왕의 정신병을 고쳤다는 부분이 있다.
이처럼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아니면 2000년이 넘게 세계를 떠돌아야 했던 민족사 때문인지 유대인 중에는 음악가, 그중에서도 바이올린 연주자가 유난히 많다.
Last Concert
라스트 콘서트
1976년 각본,
감 독 : Luigi Cozzi
주 연 : Pamela Villoresi, Richard Johnson
음 악 : Stelvio Cipriani 94분
백혈병의 스텔라와 인생에 실패한 40대의 피아니스트 리처드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 스텔라의 도움으로 재기 무대를 갖게 되는 리처드, 그가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스텔라,
그리고 그 위로 흐르던 [스텔라에게 바치는 콘체르토]의 선율... 내 청춘의 Dedicato A Una Stell... ... 스텔라 ... 그리고 영원한 마음의 연인 파멜라 빌로레시를 찾아서...
Stelvio Cipriani 작 Saint Michelle
줄거리
40대의 피아니스트 Richard(Richard Johnson 1927 영국)리처드는 손에 상처를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몽 생 미셸 근처의 한 병원 복도에서 딸 같이 어린 한 소녀(17세)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들어 갔다가, 진찰실에서 나오는 소녀의 아버지로 착각한 의사는 그녀가 백혈병으로 앞으로 2-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병원 밖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그녀 Stella(Pamela Villoresi 1957 이태리)는 자기병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방지축 그렇게 티없고 명랑하며 밝을 수가 없다. 거기다 천연덕스럽게 거짓말까지도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그녀. 리처드가 침울한 기분인데 반해 아가씨는 상쾌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두 사람을 태운 버스는 해안으로 향한다. 그녀의 이름은 스텔라(파멜라 빌로레시 분)
버스에 동승을 하고 또 내린 이후 각자 갈 길을 가야만 하는데도 결국에는 동행을 할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고, 어릴 적에 집을 떠나간 Stella의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파리까지 이들의 동행은 이어진다. 하지만 마침내 찾게 된 그 아버지는 이미 새 살림을 차려 꼬마 애까지도 있는 상황이다보니 Stella는 졸지에 오갈 데가 없는 처지가 되고 결국 이 둘은 파리의 몽마르뜨언덕 에서 함께 살게 되는데 병약한 Stella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위해 Richard는 청혼을 하게 되고 이어 조촐하고 달콤한 신혼살림에 빠진다. 한 때는 명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으나 오랜 슬럼프에 빠져서 우울하게 소일하던 리처드는 스텔라의 티없는 마음을 접하자 자신의 마음에 자리해 있던 우울함이 깨끗이 씻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Richard는 생업인 작곡 작업에 다시 몰두를 하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그동안 음악적인 영감을 불러 일으켜 주던 Stella를 위하여 작곡을 해 온 스텔라를 위한 협주곡(Adagio Concerto)이 마침내 완성이 될 즈음 Stella의 병세는 급속히 악화가 되어 파리 교향악단과 함께 이곡을 초연하면서 Richard가 드디어 재기를 하는 날 입원한 병원에서 빠져나와 그 무대를 바라보던 Stella는 Richard가 선사한 흰 드레스를 입은 채 조용히 숨을 거둔다.
몽셀미셀
Mont Saint Michel 이라는 그림같은 수도원이 있는 프랑스의 작은섬. 극중 두 남녀가 이곳을 여행하게 되는데, 이 때 흐르는 곡이 바로 Saint Michelle이지요 원래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가 해일로 인해 떨어져 섬이 되었다는 곳. 이곳의 아름다움은 D항공 CF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지요 한장의 우편엽서 배경 같은 곳..., 스텔라가 슬픈 웃음을 짓고 있을 것만 같은 곳... 몽셀미셀
프랑스 (바스)노르망디 해안가에 있는 몽 생 미셸(Mont Saint Michel)에 다리가 놓인다는 신문기사가 난적이 있는데 밀물 때는 섬이 되었다가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이 되는 이곳은 유네스코에 의해 1979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지만 수도원을 중심으로 작은 건물들이 함께 서 있는 그 특이한 모습 때문인지, 관광지로도 너무나 유명하다.
100년 전쟁 때는 바다의 요새로, 18세기말의 프랑스 혁명 때는 감옥으로도 사용이 되었다는데 바다에 떠 있는 듯한 그 독특한 수도원의 모습이야말로 역시 언제 보아도 신비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멜리스 벨레라는 작가는 <몽생 미셸>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내기도 하였지만 한편 이곳에서 수많은 영화들도 제작이 되었는데 이 영화 <라스트 콘서트>도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중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영화는 이렇게 몽 생 미셸이나 파리 등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개봉이 될 때도 불어로 더빙이 되어 상영이 되었지만 실상은 프랑스 영화가 아니고 일본의 (공동)자금으로 만든 이태리의 (합작) 영화인데 그러다보니 자연히 일본인들이 좋아하고 동경하는 이런 곳들에서 촬영을 하게 되었고 또 캐스팅과 줄거리 전개 그리고 영화 음악등도 거의 다 일본 국내시장의 (당시의) 취향에 맞게끔 제작이 되었다.
그래서 이태리에서 특별히 맞춰온 고급 양복과도 같이 일본 국내시장을 겨냥한 이 작품은 일본과 한국에서만 유명할 뿐 정작 이태리를 포함한 구미각국들에서는 거의 알려지지도 않은 영화인데 아무래도 그 신파조의 (최루성) 줄거리 자체가 서양인들이 선호하는 분위기는 당연히 아닐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어쨌든 일본(측)의 제작자인 Katsumi Furukawa의 기획 의도와도 같이 한일 양국에서는 주제곡의 대히트와 함께 엄청난 대박을 터트린 것은 분명하다
유럽판 러브스토리(Love Story 1970년)라고 불림에 조금의 손색도 없이 같은 마무리이고 또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베낀 듯 어디선가 무척 많이 보아온 줄거리 전개이다. 그러나 이렇게 흔해 빠진 신파조의 Narrative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우리들에게 그렇게 큰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신선하게 와 닿았던 (이 영화를 온통 도배한 듯한) 감성(感性)의 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무척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 감성 멜로(감성적 멜로드라마)의 1970년대 중반의 대표작인 셈인데 이런 감성적인 요인은 Location에서도 여자배우의 Casting에서도 그리고 또 영화음악에서도 아주 철철 넘쳐난다.
Love Story의 Ali Macgraw와 굳이 비교를 하자면 훨씬 더 귀엽고 매력적이지만 따져보면 또 그리 대단한 미인형도 아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귀여웠던 여인 Pamela Villoresi(1957 이태리)는 이 영화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배우였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신선하게 와 닿은 Pamela는 당시 19살의 나이로 이 17세 비운의 Stella를 연기하였는데 불쌍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적인 이미지의 천방지축의 (초반부의) 그 모습자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이 영화 단 한편으로 당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가장 데이트를 하고 싶은) 이상형의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결론은 지금 다시 생각해보아도 영국배우인 Richard Johnson과 함께 성공적인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 유학을 가 재즈를 전공하고 돌아온 후 1966년에 영화음악계에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200편이 넘는 영화와 TV극의 주제곡을 만들어 오고 있는 이태리의 중견 작곡가 Stelvio Cipriani(1937 이태리 로마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작품 1970년의 Anonymous Venetian)가 만든 이 영화의 Original Score는 이 영화의 감성적인 요인들에 있어 최고의 클라이맥스이다.
몽 생 미셸을 배경으로 이들이 만나고 그 바닷가에서 함께 걷는 초반부의 장면에서부터 연속적으로 반복이 되는 St. Michel은 우리나라에서는 영화이상으로 큰 히트를 하였는데 경쾌하기까지 한 이 음악만 듣고 있어도 저절로 귀여웠던 Stella의 싱그러운 모습이 떠오르는 아주 감성적인 주제곡의 하나이다.
그리고 St. Michel이 팝적인 감성이 풍부한 달콤한 음악이라면 영화의 중반부부터 등장을 하는 Main Theme Adagio Concerto/Dedicato A Una Stella는 클래식적인 감성요인이 넘쳐 나는 중후한 멋의 수작이다. 못 다 이룰 사랑을 표현하듯 슬픔과 우수의 덩어리같은 이곡이 흐르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Stella의 비운의 죽음을 함께 보는 많은 여성관객들을 울리기에 충분한 분위기를 기본적으로 자아내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성공요인중의 하나인 몽 생 미셸이나 아름다운 프랑스 서부 해안가 그리고 에펠탑등 감성적이고 이국적인 풍광이 있는 곳들만 골라서 배경으로 촬영을 한 장면들도 결국 다 마찬가지 연유인 셈인데 그러나 어쨌든 그 아름다운 경치들과 함께 흐르던 음악들은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도 전혀 시대에 뒤지지 않은 감성을 느끼게 하고 있다
is this the little girl i carried,
is this the little boy at play?
i don't remember growing older,
when did they?
when did she get to be a beauty,
when did he grow to be so tall?
wasn't it yesterday when they were small?
sunrise, sunset (x2),
swiftly flow the days.
seedlings turn overnight to sunflowers,
blossoming even as we gaze.
sunrise, sunset (x2),
swiftly fly the years,
one season following another,
laiden with happiness and tears.
what words of wisdom can i give them,
how can i help to ease their way?
now they must learn from one another,
day by day.
they look so natural together.
just like two newlyweds should be.
is there a canopy in store for me?
sunrise, sunset (x2),
swiftly fly the years,
one season following another,
laiden with happiness,
and tears
지붕위의 바이얼린(Fiddler On The Roof,1971 )
감독 : 노만 주이슨 음악 : 셀든 하닉, 제리 복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롱런(Long Run) 기록을 수립한 뮤지컬을 영화화한 것으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유태인 유목민들의 생활에서 엄격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는 세 딸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쉘렘 스타인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각색한 작품이다. 아이작 스턴이 지붕위에서 바이얼린을 켜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왔지만 영화 속성상 직접 출연은 않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아카데미 음악상, 촬영상, 녹음상 수상
영화 줄거리 : 1905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의 작은 마을 유태인 부락에서 우유가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테비에(하이만 투폴 분)는 가난한 삶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이 깊은 남자다.
그는 수다스런 아내 고르데와 다섯 명의 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장녀 짜이텔이 아버지와 상의도 없이 양복점 직공을 사랑한다며 그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전통을 존중하는 테비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딸 아이의 의지를 꺾을 수 없는 처지라 결혼을 승낙하고 만다. 그런데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으로 러시아 경관이 들이닥쳐 식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러시아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 우여곡절 끝에 장녀의 결혼을 마쳤더니 이번에는 둘째딸이 가난한 밀본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더니, 또 셋째까지 러시아 청년과 사랑에 빠져 버린다.
그러는 와중에도 러시아의 정국은 더욱 악화되고, 그 여파는 아나태프카의 마을에도 밀어닥친다. 유태인 퇴거명령이 떨어진 것. 결국 테비에를 비롯한 유태인들은 정든 땅을 버리고 미국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마을을 떠나간다.
해설 노만 주어슨이 감독한 ‘지붕위의 바이올린’은 고향을 잃은 유대인들의 삶을 생생히 그린 영화다. 전통을 지키려 애쓰는 부모와 세 딸 사이의 갈등을 그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 테비에 가족이 다시금 유랑의 길을 떠날 때 그들의 뒷모습에 겹쳐 바이올린 선율 '선라이스 선셋'이 애달프게 흐른다.
그래서일까, 유대인이라는 이미지는 왠지 모르게 바이올린과 겹쳐 떠오른다. 유대인은 원래 음악성이 뛰어난 민족이었다. 고대사는 기원전 700년경 아시리아의 왕 세나케리브가 유대왕 헤제키아에게 남녀 악사를 조공토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구약성서에는 소년 다윗이 하프를 연주해 사울왕의 정신병을 고쳤다는 부분이 있다. 이처럼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아니면 2000년이 넘게 세계를 떠돌아야 했던 민족사 때문인지 유대인 중에는 음악가, 그중에서도 바이올린 연주자가 유난히 많다.
레코딩을 시작한 19세기 말 이후 등장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만 꼽아도 프리츠 크라이슬러, 칼 플레시, 야사 하이페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아이작 스턴, 예후디 메뉴인, 이자크 펄만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유대인들이 유독 바이올린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유대인 연주자들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밤낮 쫓겨다닌 유대인이 가벼운 바이올린이나 들고 다녀야지, 파이프 오르간이나 피아노를 들고 다닐 수 있었겠소?”
바이올린 선율 흐르던 샤갈의 '마음의 고향' 이 저명한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의 한 사람이자 ‘지붕 위의 바이올린’ 사운드트랙을 연주한 아이작 스턴이 지난해 9월22일 81세를 일기로 뉴욕에서 사망했다. 그의 타계 소식은 적잖은 음악애호가들에게 여러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카라얀이나 번스타인 같은 20세기 거장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와는 또 다른 감회다. 스턴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동시에 미국 음악계를 움직이는 막후 실세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주자는 스턴에게 부탁하면 국적까지도 바꿀 수 있었다.
스턴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주인공처럼 옛 소련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한 유대인이다. 그는 독주곡에서 협주곡, 실내악, 현대음악 등 음악의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며 100종이 넘는 음반을 녹음했다. 케네디부터 클린턴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백악관 음악회에 스턴을 초청했다.
스턴은 냉전 시대에 소련과 중국에서 연주한 최초의 미국 음악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나치에 협력한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 등의 지휘자와는 절대 연주하지 않았으며 독일 팬들의 호소에도 죽는 날까지 독일 무대에 서지 않았다.
선라이즈 선셋 Sunrise Sunset 이 노래는 큰 딸의 결혼식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인데 어린 딸이 자라서 결혼을 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한 아버지의 심정을 얘기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