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해아심이 2017. 8. 10. 10:37


 돌배개, 2009.2 초판 50쇄



사회란 '모두살이'라 하듯이, 함께 더불어 사는 집단이다. 협동노동이 사회의 기초이다.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함께 만들어낸 생산물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갖는다는 것이 곧 사회의 '이유'이다. 생산과 분배는 사회관계의 실체이며, 구체적으로는 인간관계의 토댕이다. -27


무엇이 모두살이를 '각살이'로 조각내는가 - 28


그 개인이 이룩해 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너도 알고 있듯이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귀속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 65


일상의 궤도에서 잠시 몸을 뽑는다는 것은 우선 그것만으로서도 흡사 도원에 들르는 마음이 되기도 할 것이다 -81,82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 보도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思沈)하여야 사무사(思無邪)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85


있으면 없는 것보다 편리한 것도 사실이지만, 완물상지(玩物喪志) 가지면 가진 것에 뜻을 앗기며 물건은 방만 차지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자리를 틀고 앉아 창의를 잠식하기도 합니다.-177


돌과 돌이 부딪쳐 불꽃이 튀듯이 나라는 생각은 '나'와 '처지'가 부딪쳤을 때 공중에 떠오르는 생각이요, 한 점 불티에 지나지 않은 것, 그 불꽃이 어찌 돌의 것이겠는가, 어찌 돌 속에 불이 들었다 하겠는가고 싯달타는 가르칩니다.

'나'라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에 억눌려 무척 작아졌을 때 일어나는 불티 같은 순간의 생각이며 물에 이는 거품과 같은 것, 찰나이며 허공인 나를 버림을로써 대신 무한히 큰 나를 얻고, 더 큰 고통을 껴안음으로써 작은 아픔들을  벗는 진지와 해탈은, 불꽃을 돌에 돌려주고 거품을 물에 돌려주고 빈비사라 왕의 마음을 백성들의 불행에 돌려주려는 싯다르타의 뜻과 한 뿌리의 열매입니다. -203,204


가을에 흔히 사람들은 낙엽을 긁어모아 불사르고 그 재를 뿌리짬에 묻어줍니다 이것은 새로운 나무의 식목이 아니라 이미 있는 나무를 북돋우는 시비입니다. 가을의 사색도 이와 같아서 그것은 새로운 것을 획득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짐하고 챙기는 '약속의 이행'입니다 -225


비극은 남의 것을 대신 체험할 수 없고 단지 자기 것 밖에 체험할 수 없는 고독한 1인칭의 서술이라는 특질을 가지며 바로 이러한 특질이 그 극적 성격을 강화하는 한편 종내에는 새로운 '앎'-아름다움-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233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244


사람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정적 평면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발휘되는 가능성의 총체이기에 그렇습니다. 한편이 되어 백지 한 장이라도 맞들어보고 반대편이 되어 헐고 뜯고 싸워보지 않고서 그 사람을 알려고 하는 것은 흡사 냄새를 만지려 하고 바람을 동이려 드는 헛된 노력입니다.  -246


논어 옹야편에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하여 '자'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로 보는데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기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271


사람은 실천활동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를 다시 실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진실성이 검증되는 것입니다. 실천은 인식의 원천인 동시에 그 진리성의 규준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거의 결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그것은 곧 인식의 좌절, 사고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고 발전하지 못하는 생각이 녹슬 수 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제가 징역 초년,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생각의 녹을 상대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생각을 녹슬지 않게 간수하기 위해서는 앉아서 녹을 닦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요컨대 일어나서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77


용기는 선택이며 선택은 골라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 281


소혹성에서 온 어린 왕자는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합니다. 관계를 맺음이 없이 길들이는 것이나 불평등한 관계 밑에서 길들여진 모든 것은, 본질에 있어서 억압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개의 나무의자든, 높은 정신적 가치든, 무엇을 공유한다는 것은 같은 창문 앞에 서는 공감을 의미하며,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운명의 연대를 뜻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286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313


성공은 그릇이 넘는 것이고, 실패는 그릇을 쏟는 것이라면, 성공이 넘는 물을 즐기는 도취인 데 반하여 실패는 빈 그릇 그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입니다. 저는 비록 그릇을 깨뜨린 축에 듭니다만, 성공에 의해서는 대개 그 지위가 커지고, 실패에 의해서는 자주 그 사람이 커진다는 역설을 믿고 싶습니다 -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