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말자 | 도올 김용옥

해아심이 2017. 12. 19. 16:24


  2013.1.4 1판 8쇄, 통나무



 책 제목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내용이라 호기심으로 구매를 했던 책이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그대로 방치?하게 되었고, 최근 읽지 못한 책을 확인하고 다시 집어 들었다.

왜? 그때 이 책을 사두고 읽지를 못했을까? 책의 형태를 보아하니 첫 몇페이지를 보다가 접은 것 같다.

내용인 즉, 어렵다.. 아마 그래서 첫 페이지를 들춰보다 접은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책의 내용들이 지금은 쉽고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그동안 여러 책을 본 것이 이 책의 내용들을 좀 더 쉽게 다가가게 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어렵다.

저자가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처음부터 우주/천지를 내 세웠다면 역시나 다시 접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 어렵지 않게 단계를 밟듯이 읽혀지기는 하나,

철학, 사상과 관련된 이론적인 바탕이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의 통달의 힘이 부러운 1인이다.


서막]

자기의 어진(仁) 본성을 스스로 저 버리는 것을 자포(自暴)라 이르고, 이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없다고 생각하여 의로운 길을 걸어가지 않는 것을 자기(自棄)라 이른다. 자포란 자기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요, 자기란 자기가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자포자기처럼 무서운 죄악은 없다. 이 세계를 변혁시킬 힘이 너에게 이미 충분하다. 어찌하여 인택(仁宅)에 거하지 아니 하고, 의로를 걸어가지 아니 하느뇨?

(pp.13-14)


청춘]

청춘은 반항이다. 거역이며, 항거다! (p.17)

중용 1장에 이런 말이 있다.  '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결국 나는 청춘을 中에서 和로 가는 끊임없는 發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p.22)

생존의 기본은 밥, 똥, 잠이다(p.32)

문명의 정점이란 정점을 유지하는 유형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이 가능해야만 그 정점을 유지할 수 있다. (p.32)

일단사 一簞食  일표음 一瓢飮 이라도 인생의 지락이 거기에 있다고! 쫄지마! 스바하! (p.35)

청춘이 기존의 체제의 압박 속에서 순응해야만 하는 중압감을 벗어날 수 잇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 체제의 상부 권좌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p.47)


역사]

*서기(anno domini nostri iest christi) - 기독교적 세계관 질서

  단기-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bc 2333년을 원년으로 하는 한국의 연호, 나철- 대종교 -항일독립운동 - 한국의 역사관(pp.52-55요약)

역사는 반드시 기술되어야만 역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는 인간의 언어의 소산인 것이다. 인간에게 언어가 없다면 역사도없다.(p.57)

모든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어도 진보한다고 말할수는 없다. (...) 역사는 그냥 흐를뿐이며 진보하지 않는다(p.63)


조국]

분열의 역사, 사대의 역사 두 마디로 요약 되는데....(p.94)

'사대'란 고정적 대상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의 상실, 자율성의 파기, 강대국에의 의존성을 초칭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사대는 조선왕조의 사명, 사청에서 구한말.일제시대의 사일로, 그리고 그 이후의 사미로 그 제목만 바꾸어 나간 것이다(p.95)


우주]

宇는 요즘 말로 하면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고, 宙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주라는 것은 결국 시공복합체를 가리키는 것이다.(p.149)

氣는 感이라는 것이다. 氣는 感, 즉 느낌의 덩어리이다. 기는 자체로서 느낌의 활동을 본유하고 있다. 느낌이란 타의 기를 분수(分受)하는 것이다. 분수는 일종의 향유이므로 배타를 동반한다. 배타는 나의 기의 구체성의 형식이다. 구체성이란 몸이 형성되어 가는 한정성이다. 이러한 구체성의 형식을 理라고 하는 것이다. [주역] '계사'에서는 "감이수통 感而遂通 "이라는 말을 썼다. 기를 감발하면서 타의 기를 통섭해 가면서 하나의 理의 체계로써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p.183)

리발 理發의 과격한 의미는 인간 내부에 매우 이질적인 독자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리의 도덕성이 나의 몸의 기를 명령하는 것이다. 그것은 칸트처럼 초월적 자아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윤리적 맥락에서 전제되는 하나님이다(p.186)

말로 인하여 인간의 모든 관념적 독단이 생겨난 것이다. 인간은 언어의 집 속에서 살지 않을 수가 없다.(p.192)


천지]

생명은 째즈다. 그리고 생명의 모든 현상에는 [역]이 들어있다. 그것은 필연과 우연의 복합체이다. 단백질은 끊임없이 합성되고 끊임없이 분해되면서 동적 평형을 유지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생체의 '시중 時中'이라는 것이다. (p.236)

이 세상의 모든 '것 events'은 음과양이 반드시 혼융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음과 양이 혼융되는 동적인 과정 속에서만 그 존재성을 유지할 수 있다.  역 易 그 자체가 "일음일양의 도"이다.  일음일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음, 하나의 양'이라는 뜻이 아니라 음과 양이 끊임없이 시공 속에서 교체되는 과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음양이 섞이지 않으면 존재는 없다. (p,238)


종교]

인간이 하느님을 자기로부터 대상화한 것은 인간이 언어를 획득한 후 대상세계로부터 무한한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p.252)

나는 언젠가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죽음을 행복하게만 생각했다면 인간에게서 종교가 문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공포스러운 불의의 죽음도 많고 뜻밖의 사고도 많고 전쟁,질병,기아,천재로 인한 비극적 죽음도 많고 또 안락한 가정 내의 임종이라 할지라도 가족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상황이 많을 것이다. 죽음이란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의 본질이 되었다. 이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종교형태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p.275)

종교의 궁극적 과제 상황은 '죽음'이 아니라 '삶' 그 차제라는 것이다. 종교는 역시 긍정이 아니라 부정에 그 위대성이 있다.(...) 삶의 부정적 측면의 대표적인 것이 곧 '욕 欲'이라는 것이다. 결국 종교의 최대의 주제는 어떻게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느냐에 있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p.277)



사랑이란 케미스트리이다(p.289)

현대어의 '사랑한다'와 한문의 '애 愛'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애'는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엇을 '아낀다'는 뜻이다. 절약한다는 이미도 들어가 있고, 귀하게 여긴다. 보호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 그런데 현대어의 사랑 love은 플라통의 에로스, 기독교의 아가페나 필리아, 그리고 영어의 'to make love'와 같은 표현에 담긴 남녀간의 성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형이상학적,형이하학적 의미를 포괄하는 지극히 외연이 넓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전혀 우리의 감정을 담고 있질 않다.(p.291)


음식]

식 食은 똥이다. (p.318)

서구라파 근세 이성주의의 발전이 과학의 발전을 가져왔고, 과학의 발전이 제국주의를 낳았고, 제국주의는 끊임없는 식민지화를 감행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근세의 합리적 이성을 '도구적 이성'이라고 부른다. 도구적 이성은 처음에는 인간의 문명을 위하여 자연을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지금은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을 지배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p.326)

인간의 건강은 그 개체가 속한 커뮤니티의 삶의 양식이 지켜주는 것이다(p.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