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림이다 | 손철주.이주은

해아심이 2018. 5. 9. 09:23


 초판 1쇄, 2011.11.7, (주)문학동네, 손철주.이주은, 알라딘중고구매, 20180427 讀


손철주의 그림과 관련된 책은 세번째이다.

그림과 함께 엮어나가는 이야기들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에 동양화와 서양화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형태로 엮여 있다.

동양화이든 서양화이든 감성은 똑같구나

두 엮은 이들의 감성과 풀어내는 이야기도 비슷함이 읽는 동안

편안함을 준 것 같다.

그림은 그립다의 또 하나의 표현이라는 것!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끌어내는 원천의 의미이지 않나 싶다!

--------------------------------------------------------------------------------------


'그리다'는 움직씨이고 '그립다'는 그림씨이다. (.....)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 - 8쪽


부재와 결핍이 그리움을 낳지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그리움은 바로 곁에 두고도 그리워해야 하는 일입니다. -36쪽


유혹에도 점층적인 단계가 있지요. 먼저 끌림입니다. 저절로 눈이 가는 거지요. 다음이 쏠림입니다. 마음이 얹혀 갑니다.

그리고 꼴림입니다. 가 닿고 싶은 욕구죠. 마지막이 흘림입니다. 넋이 나간 상태이지요. - 58쪽


유혹의 발목이 보이시나요. 한 발은 늘 족쇄를 차고 있답니다. - 62쪽 [앵무희접도]


늙음은 낡음이 아니지만 낡으면 늙습니다. 닳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고집이 세고 견문이 좁으면 낡습니다. - 123쪽


행복이 구름 위에 있나요. 먹고 마시는 일상의 물적 토대가 마련돼야 행복을 누릴 수 있지요. 배고픈 즐거움은 씨알도 안

먹힐 소리고, 꽃잎만 뜯어 먹고 사는 사람은 이승에 없습니다.

(......)

'happiness'란 영어가 'happen'에서 비롯됐다면서요.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이란 거죠.

행복은, 밖에서 온 것은 행복이 아니라 행운입니다. -152쪽


'엄마는 부자로 살려고 결혼한 게 아니야.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샜지' -165쪽


술탈이 곧 일탈입니다 -177쪽


청년은 열정 때문에 취미를 바꾸고 노년은 습관 때문에 취미를 간직한다지요.

나이 들수록 취미가 완강해집니다. -206쪽


페미니스트 중에 '모성' 운운하면 싫은 내색을 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여성의 몰주체성을 떠올리게 한답니다. 저는 '부성'이라고

하면 남성의 몰주체성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모성이나 부성은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이 고결한 것은 희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고, 모성은 희생 위에 꽃핀 사랑이라서 거룩하고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그 희생을 자청하잖아요. 247-249쪽


자비는 왠지 부처님의 입김이 풍기고 은총은 자꾸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253쪽


아주 오래전 프랑스에서는 '레스토랑'이라는 단어가 먹는 장소가 아니라 음식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긴 여행중 잠시 머물다 가는

투숙객들을 위해 민박집에서 상시 끓여놓고 있다가 한 사발씩 인심 좋게 제공했떤 육수 이름이 바로 레스토랑이었어요.

레스토랑은 회복해 준다는 의미의 'restore'라는 어원에서 파생되었는데, 15세기 무렵까지도 프랑스에서는 양고기나 쇠고기등

각종 고기를 푹 삶아 우려낸 맑은 국물에 소금과 향료, 그리고 몸에 좋다는 약간의 보양재료를 함께 넣어 끓인 후 수시로 따끈하게

한 컵씩 부어 마셨다고 해요. 그리고 그걸 마시면 몸도 마음도 전부 회복된다는 의미에서 그 육수를 레스토랑이라고 불렀다지요.

-263쪽


크로키는 동세에 갛아고 감필은 기운에 능합니다.

........

동양하는 뜻의 자취를 따라가고, 정신의 기운을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러 '사의 寫意'라고 하지요. 바로 '겉을 그리되

뜻을 드러낸다'는 취지입니다. 하쿠인은 달마도를 그리는 데 80년이 걸렸다고 했찌요. 스케치를 잘하려고 긴 시간 연습했던 게

아닙니다. 달마의 선미 禪味를 깨닫는 데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고백입니다.  - 271쪽


신은 인간을 샘낸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현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래요. 신은 모든 것을 다 보니까 '지금now'이 없이

'항상-이미 always-already'의 느낌으로 산대요. 지난 것은 잊어 버리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며, 앞일은 우연에 내맡긴

사람에게야 지금이 존재하는 거라는 군요. -281쪽


서양 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그리는 대상을 설득력 있게 실물처럼 그리는 환영일 겁니다. 모든 디테일이 완벽할 때에만

현실에 대한 강한 환영이 생격날 수 있어요 그러므로 환영의 본성은 세세한 완벽함입니다. -284쪽


동양화에서 감필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아마 인상이겠지요?

인상과 달리 환영은 이중적입니다. 완벽한 닮음이란, 그러니까 나를 대신하는 일종의 분신을 만든다는 것은, 거울 속의 세상처럼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할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입니다. 대상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세상은 둘로 갈리게 됩니다.

그림 안의 세상과 그림 바깥의 세상으로 말이지요. - 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