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생 | 류시화

해아심이 2018. 5. 16. 16:34


낙타의 생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3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