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키몬과 페로, 루벤스 작
<키몬과 페로, 루벤스, 161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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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Paul Rubens Simon and Pero (Roman Charity) 1. 왜곡되어 유포되고 있는 설명입니다. 푸에르토리코의 국립미술관에 걸린 명화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당신은 어떤 느낌을 가졌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가슴을 드러낸 여자와 노인의 모습을 보고 단순히 에로틱하다거나 색슈얼한 생각만을 떠올렸는가? 빼빼 마른 노인의 모습에서 19C 팜므파탈이 그림 속의 주재료로 떠오르던 시기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요부와 그에 유혹당한 남자를 떠올려 보진 않았을까? 수의를 입은 노인은 젊은 여인의 아버지다. 커다란 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는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이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다. 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 감옥에 넣고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음식물 투입 금지'
노인과 여인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이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노인과 여인에 깃든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속에 담긴 본질을 알고 나면 눈물을 글썽이며 명화를 감상한다. 사람들은 가끔 본질을 파악하지도 않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우를 범한다.
교만과 아집 그리고 편견을 버려야만 세상이 보인다.
2. 그림에 대한 진실은 이렇습니다. 이 그림에 대한 설명 요청과 문의가 많이 와서 이번 기회에 정리해 봅니다. Peter Paul Rubens (1577-1640), "Roman Charity", 1612,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panel, Jean-Baptiste Greuze 앞의 둘은 루벤스, 세번째는 프랑스 화가의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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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tip.daum.net/question/39033028
*2. 그렇지만 진실은..
B.C 3세기에 살았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로마황제 발레리 막시무스가 아님)는
많은 저작을 남기는데 그중 현재까지 약 7권의 책이 전해진다.
그 중의 한 권에는 로마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책에는
" 죄를 지은 노인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 이때 죄수를 면회한 그의 딸이 마침 아이를 낳아 젖이 흐르던 상태에서 피골이 말라가는 아버지를 보고 자신의 젖을 아버지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죄수를 석방 한 일이 있다.
죄는 용서 할 수 없더라도 자식의 지극한 정성이 아버지를 살린 것이다." 라는 교훈적 이야기를담고있다.
이 그림은 아래의 원문의 설명대로,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간수들이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며 16-18세기 화가들은 이 장면을 주제로 회화와 조각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하등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이야기와는 무관하며, 이그림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도 암스테르담의 "RijksMuseum"이며,
원 제목이 Roman Charity(= 로마)이고 부제로 simon & pero 인 화가 루벤스의 그림이다.
내용출처:월간조선
좀더 자세한 내용은 원문링크를 참고하세요~
다음은,네덜란드 화가 마이포겔이 루벤스의 원작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에 대해 노성두 님께서 쓰신 글내용입니다.
마이포겔의 「키몬과 페론」-효녀페로 이야기
글쓴이:노성두 서양미술사학자. | 2004-07-08
루벤스의 원작에서 부녀 사이의 심리적 역학 관계를 빌어왔다
우리나라의 대표 효녀가 심청이라면, 고대 로마에는 페로가 있다. 페로는 늙은 아비 키몬이 금이야 옥이야 키운 외동딸이다. 그런데 아비가 어떤 일로 감옥에 갇혔는데, 청천벽력 같은 판결이 떨어졌다. 먹을 것을 아무 것도 주지 말고 굶겨 죽이라는 것이다. 혼자 옥바라지를 하는 효녀 페로는 매일 쇠약해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른다. 간수가 어찌나 서슬이 퍼런지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도 들여보낼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며칠 못 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생긴 것이다.
페로는 며칠 고심 끝에 야릇한 꾀를 하나 낸다. 굶어서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제 젖을 물리기로 한 것이다. 효심이 지극하면 처녀라도 수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뚝딱 생겨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던 키몬은 다행히 회생했다. 페로가 매일 풀방구리 드나들듯하면서 젖을 물리니 오히려 늙은 아비는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
뭐, 이런 줄거리인데, 이 이야기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기원후 30년경에 펴낸 『로마의 기념할 만한 업적과 기록들』의 제5권 4장에 실린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특히 부모에 대한 효성, 형제 사이의 우애, 조국에 대한 충성의 본받을 만한 사례가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페로와 키몬의 이야기가 가장 빛났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르네상스 문필가 보카치오가 『로마식 사랑』(Caritas Romana)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리하고 펴내서 그 훈훈한 내용이 널리 알려졌다.
효녀 페로 이야기는 곧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감옥이라는 밀폐된 공간 상황과 죽음을 앞둔 절박한 심리 장치를 교묘하게 엇대 놓고, 아버지와 딸 또는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배역 구성까지 얹었으니 구랏발 하나로 먹고 사는 인문주의 글쟁이들의 입맛이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윤리적 가치와 혈연적 가치로서의 효성이 어떤 함수 관계로 해석되는지가 논쟁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도 딸이 아버지에게 젖가슴을 꺼낼 수 있는가? 그리고 딸의 행동에 대한 아버지의 선택은 어땠을까? 이런 문제가 인문학자들의 관심사였다면, 이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좀 다른 문제와 씨름했다. 아버지와 딸의 역할과 심리적 전개를 효율적으로 표현하려면 두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또는 어두운 감옥의 공간 배경과 횃불 조명의 명암법을 어떻게 줄거리의 전개와 연결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실제 구성을 짜고 채색을 실행하는 화가들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효성의 덕목에 밑줄 쫙 긋는 그림을 그려야 할 텐데, 가령 감옥 쇠창살 바깥에서 처녀가 허연 젖만 불쑥 들여보내는 식의 자세를 취했다가는 자칫 그림이 우스꽝스러워질 위험이 있고, 그렇다고 어린 딸이 젖무덤 사이에 늙은 아비를 꼭 끌어안고 있는 식으로 가다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의 주제처럼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의 주제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생긴다. 본받을 만한 교훈 그림이 싸구려 눈요깃감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 말이다. 네덜란드 화가 마이포겔도 틀림없이 이런 문제로 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가난한 화가는 이런 말로 예술의 부끄러움을 위로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지. 심 봉사 딸 심청이라도 그랬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