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머니의 아랫배를 내려다 보다 | 이승하
해아심이
2019. 6. 19. 08:29
어머니의 아랫배를 내려다 보다
이승하
음모를 본 적이 없었다 한때는 풍성했을까
지금은 듬성듬성 흰색과 갈색도 섞여 있는 음모
바퀴벌레 같은 희망과 토막 난 지렁이 같은 절망
며느리도 간호사도 인상 찌푸리게 하는
기저귀 가는 일과 사타구니 닦는 일
내 몸이 언젠가 저 구멍에서 나왔다니
알몸을 본 적이 없었다
젖가슴 크기를, 유두 색깔을 알 도리 없었다
염하는 중늙은이와 조수인 젊은 친구
무표정한 얼굴로 어머니 몸을 염포로 싸고 있다
체중 줄이지 못해 늘 힘겨워했던 당신의 몸
암세포가 덮친 말년의 고통 말해주듯이
불룩했던 아랫배가 푹 꺼져있다 쭈글쭈글하다
30년 장사하는 동안
체중을 지탱했던 튼실한 두 다리
젓가락이 되어있다
염장이 중늙은이야 뭐 대수롭지 않겠지만
젊은 조수가 내려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하체
내 치부를 드러낸 것보다 부끄러워
입안은 마른 염전이 되고
시선은 숨을 곳 찾아 자꾸 달아난다
곶감 같은 저 아랫배
언젠가는 홍시 같았을까
어머니도 아버지한테 이 말을 했을까
- 이리 와서 이 배 좀 만져봐요
태동이 대단한 걸 보니 사내앤가 봐요
저 아랫배 그 언젠가
내 아버지를 달뜨게 했을 것이다
무덤처럼 솟아올랐을 것이다
아랫배 속에서 나 한때 웅크리고 있었겠지만
모레면 배부를 일 다시 없을 세상으로
어머니 저 몸을 불태워 보내드려야 한다
ㅡ <생애를 낭송하다>, 이승하, 천년의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