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박노해 시

H309. 내가 여행하는 이유_박노해

해아심이 2022. 8. 15. 12:13

 

내가 여행하는 이유

                                           박노해

 

여행을 떠나지 않은 이에게

세상은 한쪽만 읽은 책과 같아

 

탐험을 나서지 않은 이에게

인생은 반쪽만 펼친 날개와 같아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기 밖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나 자신마저 문득 낯설고

아득해지는 저 먼 곳으로

 

하지만 낯선 땅이란 없다

단지 여행자만이 낯설 뿐

 

가자 생의 순례자여

먼 곳으로 더 먼 곳으로

더 놓고 깊은 곳으로

 

미지의 어둠 속에서 밝아오는

그 빛이 내 가슴을 관통하여

 

편견과 확신이 사자진 자리에

진실의 광채가 감돌게 하라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나에게 가장 낯선자인

나 자신을 탐험하고 마주하는 것

 

그 하나를 찾아 살지 못하면

내 생의 모든 수고와 발걸음들은

다 덧없고 허무한 길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