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_류근, 진혜원

해아심이 2022. 8. 24. 16:38

 

 

 

 

 

2022.05.05 1판8쇄, 해냄출판사, 류근,진혜원

 

 

시가 필요한 시대라고 외치는 류근시인

맞다. 

요즘은 시가 정말 필요하다.

너무나 각박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고

핸드폰으로 모든 정보를 얻어가고 있는 시대가 되어

이제는 책을 직접 보는 경우가 많이 줄었으며 

특히나, 시집은 서점가에서도 뒤쪽에 진열될 정도이다. 

 

하지만, 시가 무엇인가?

어느 한 순간 못내 참지 못하고 뱉어내는 그 누군가의 감정 아닌가

그 감정이 그 누구에게 한정하지 못하는 것이 시이다. 

서로 공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여러 시대에 각각의 시인들의 시들을 엮은 시집이다. 

서정시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시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간만에 차분히 들여다 본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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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16쪽)

 

 

작은연가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18쪽)

 

 

사람들은 왜 모를까

                                    김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꽃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는 것을

돌아 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32-33쪽)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48-49쪽)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 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146쪽)

 

 

텃새

                                  김종해

 

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새는 언제나 나뭇가지에 내려와 앉는다

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하늘 바깥에서 노숙하는 텃새

저물녘 별들은 등불을 내거든데

새상을 등짐지고 앉아 깃털을 터는

텃새 한 마리

눈 날리는 내 꿈길 위로

새 한 마리

기우뚱 날아간다(160쪽)

 

 

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사람을 만날 수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204쪽)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224-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