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강신주
예전에 제가 '모든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에게 바치는 헌사다'라는 말을 했잖아요. 인문학의 핵심가치는 사랑과 자유를 지향하는 거예요. 자유를 포기하거나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거죠. 사랑광 자유는 결국 같은 겅예요.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만일 내가 타인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면, 나는 '사랑받는 상대'로서 자유롭게 선택되어야만 하다"라고 말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방도 나를 사랑하기를 원해요. 그렇지만 상대방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나를 사랑해야 해요. 그래야 상대방의 사랑이 가치가 있으니까요. 상대방이 자유롭고, 나를 떠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기를 원하는 거예요. 타인의 자유까짇도 사랑하는거죠 - 22쪽
살아간다는 것이 인연의 관계를 맺는거군나, 누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구나, 내가 누리는 것들ㄹ이 수많은 노동으로 복잡하게 인연을 맺은 결과물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예요. -29쪽
그러니까 닟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정신의 세 단계 변화'에 대해서 말하잖아요.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에서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에 대해서, 낙타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터벅터벅 인내하면서 성실하게 나르는 단계예요. 그래서 낙타는 복종을 상징하죠. 그런데 사자가 되는 단계가 있어요. 사자에게 짐을 올리려면 사자를 죽여야 가능해요.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거부하는거죠. 사자는 저항을 상징하는 셈이죠. 그 다음 어린ㄴ아이의 단계는 창조를 상징해요. 놀이를 창조하고 자기 의지를 요구하고 자기 세계를 찾은 삶이예요 - 64~65쪽
얼굴을 보면서 해고하는 것은 힘들어요. 레비나스라는 철학자가 얼굴의 형이상학 '타자의 얼굴'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건 뭐냐하면 그 사람 얼굴을 보고 총질을 해 봐라, 얼굴 보고 해고를 해 보라는 거예요. 거대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죠. 통계를 보고 해고를 결정해요. 그리고 해고 통고는 다른 사람을 시키든가, 아니면 메일이나 카톡으로 하면 되죠. 얼굴 볼 일이 없는거예요. 해고가 불가피한 이유는 구조적이예요. -150~151쪽
행복에는 두 종류가 있잖아요. 내 것이 늘면 늘수록 느끼는 행복과 내 것을 덜어낼 수 있어서 느끼는 행복. 벤담적 행복과 부처의 행복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하고, 아니면 소유로부터 발생하는 행복과 무소유로부터 생기는 행복이라 해도 좋을 듯해요. 내 것을 기쁘게 덜어낸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 짐을 내가 대신 들어주고, 아이가아플 때 병구완을 하고, 휠체어를 밀어줄 때 뿌듯함을 느껴요. 자본주의적이고 벤담적인 뱅복과 공동체적인 행복은 전혀 다르죠. -186~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