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은 흐른다 | 로랑스 드빌레르

해아심이 2025. 3. 20. 09:26

1판 51쇄 202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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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다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어디에 머무르고, 흐를 준비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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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삶은 등산보다 항해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산을 타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 있지만 산은 스스로 너울거리며 나를 흔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다는 다르다. 바다는 파도를 억지로 막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 '파도처럼 인생에도 게으름과 탄생, 상실과 풍요, 회의와 확신이 나름의 속도로' 밀려운다. 프랑스 철학자 드빌레르는 파도처럼 우리 삶에 다가오는 모든 것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라고 주문한다.(4쪽, 최재천 추천글 중)

 

'바다 청소부'라고 불린 지 몇년이 되었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눈부시게 푸른 물결, 붉은 낙조, 수많은 생명이 노니는 바닷속은 매혹적이다. 단 멀리서 볼때만 그렇다. 가까이 가면 바다는 거칠고 위험하여 결코 쉽지 않다. 인생처럼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셈이다. 하지만 바다는 그 자체로 여전히 눈부시다(10쪽, 박승규 추천글 중)

 

바다는 우리에게 소극적인 태도와 좁은 시각에 안주하지 말라고 속삭이고, 저 멀리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몸소 들려주면서 어디든 좋으니 훌쩍 떠나보라고 말한다. 어깨에 무겁게 올려지 짐을 잠시 내려놓고 가볍게 발걸음을 내디디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걷는 것조차 버거울 땐 자신에게 우리를 모두 내맡겨도 좋다고 허락한다(30-31쪽)

 

바다는 자신의 모든걸 내어주고 포용할 것처럼 보이지만 비밀이 가득하다. 그래서 바다는 언제나 탐구 대상이다. 

(중략)

바다는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고 지배당하지 않는다.(31쪽)

 

아름다움을 쫓아다니지만 말고 아름다움을 통해 예상치 못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감각을 갈고 닦아야 한다. 세상을 끝없는 말초적인 자극과 흥분으로 채우지 말자. 우리가 보내는 시간을 끝없는 분주함으로 채우지 말자. 혼자 있는 시간 자체를 소중히 하고, 고독이 찾아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61쪽)

 

문제가 생긴 것을 인지하면 이후로는 전체는 보지 못하고 문제에만 매달려 있다. 그렇게 바로 코 앞의 것에만 집중하면서 전체 맥락을 못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놓치는 것이다. 잠시 한 발짝 물러서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움직여서 다른 것을 사상해야 한다(69쪽)

 

가벼움은 예술이다. 평소 우리는 수천 가지의 무게에 눌려 있다. 과거, 잃어버린 행복, 실연, 현재 이뤄야 할 것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아라는 무게에 눌려 있다. 견디기 힘든 가장 무거운 것은 자아다. 자아가 무거운 이유는 지금 나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때문이다(120쪽)

 

익숙한 것은 더 이상 탐구하고 새롭게 감상할 수 없게 된다. 무뎌졌기 때문이다 (중략)

이미 익숙한 일이라 더 이상 흥분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권태기가 왔다고 한다

이외에 또 다른 안타까운 심리가 있다. 이미 가진 것은 더 이상 원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 것이다. 사물 본연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이 사물에 더 이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 뿐이다.(129쪽)

 

삶의 예술이란 '오티움'으로 '유유자적'이다. 비생산적인 것에만 몰두하며 영혼과 정신을 높이 갈고 닦는 시간을 가리킨다. 독서와 철학, 명상, 친구들과의 대화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오티움과 반대되는 말고 '네고티움'이 있다. 네고티움은 분주함을 의미한다. 바쁘게 하는 일, 시간표와 스케줄 및 의무와 제약으로 이루어진 삶이 네고티움에 속한다. (141쪽)

 

자연이 비어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인간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인간은 모르는 곳에서 무섭고 위함한 괴물들이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항해를 할 때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미지의 영역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엉뚱한 상상으로 괴물들을 마들지 말아야 한다. 편견과 왜곡된 생각에 갇혀버리면 세게관이 좁아지고 단순해진다(154-155쪽)

 

바다는 배경에 따라서, 무엇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서도 그 빛이 달라진다(179쪽)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배들도 바다가 빙하로 조여오면 방법이 없다. 배가  빙하에 갇히면 가느다란 가지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도 살다 보면 빙하에 갇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온도가 갑자기 뚝 떨어지고 모든 것이 얼어버린 다른 세상 속으로 온 기분. 내가 밟은 이 땅은 온통 실패로 가득하고, 고통은 북극의 밤처럼 영영 끝나지 않을 듯 길고, 하루하루 차갑다 못해 시린 실망을 맛 본다(206쪽)

 

살다 보면 깃발을 크게 펼치고 항복을 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패배했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전투가 무의미하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다 때로는 항복이 최선이다.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롭다(213-214쪽)

 

우리는 일상에서는 분명히 말하지 않고 감정도 직접 전하지 않는다. 도와 달라고 할 때, 거절할 때, 경고를 줄 때도 애매하게 말하거나 돌려서 말하고, 그마저도 주저한다. 살면서 많은 시간을 우리는 빙빙 돌려 이야기하는 데 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아니오''예'를 명확히 하고 형식이 서툴러도 요청 사항은 분명히 표현하는 법을 배우라는 교훈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지금 당장 말하자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216-217쪽)

 

복수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를 파괴한 대상을 파괴하고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한다. 공격을 당했으면 되돌릴 수 없다. 복수심은 차갑든 뜨겁든 갈증만을 남긴다(220-221쪽)

 

<모비 딕>은 손에 넣기 힘든 무엇인가를 쫓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열렬하고 간절히 원한다. 그 모든 것은 흰 고래로 상징될 수 있다. 흰 고래는 복수의 대상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되 알 수 없는 오래된 욕망이 될 수도 있다. 멜벨에게는 그 욕심이 소설을 쓰고 독자들에게 읽히는 것, 대중의 마음을 울릴 표현을 찾는 것이었다. 우리가 쫓는 흰 고래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행동할까? 무엇을 욕망하는지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분명히 알고 있긴 할까? 우리는 의미, 이유, 꿈을 찾아 삶이라는 바다에서 헤맨다(224-225쪽)

 

삶이란 바다처럼 다양한 색을 띤다

어느 날은 눈부신 푸른색이었다가

또 다른 날은 짙은 회색이다. 

바다의 빛이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산다는 것도 그러하다(2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