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 프리드리히 니체 아포니즘
나락으로부터, 심각한 질병과 심각한 회의로부터 돌아온 자는, 반드시 새로 태어난다.(15쪽)
'너'라는 호칭은 '나'라는 호칭보다 오래되었다. 너라는 호칭은 신성하게 여겨지지만, 나라는 호칭은 아직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이웃에게로 모여드는 것이다.(33쪽)
행동은 약속할 수 있지만, 감정은 약속 할 수 없다. 감정은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37쪽)
만약 하루의 3분의 2 정도를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그가 정치가이든 상인이든, 혹은 관리나 학자이든 그저 노예일 뿐이다(60쪽)
정신의 세가지 변화에 대해 그대들에게 설명해야겠다.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고,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 경위를 (69쪽)
어린아이는 순수하다. 망각이다. 새로운 출발이다. 하나의 놀이다. 저절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다. 최초의 운동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성한 긍정이다.(72쪽)
읽는 것을 기술로 단련하기 위해서는 어떤 습관이 필요한데, 오늘날에는 이것이 거의 잊혀져 버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되새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저작들이 사람들에게 읽히려면 아직도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나는 독자가 소처럼 읽어야 한다고 믿는다(85쪽)
철학이란, 스스로 얼음 구덩이와 높은 산을 찾아 헤매는 것을 말한다. 생존엥 포함된 모든 의문을 탐구하는 것,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구속된 모든 영역을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91쪽)
인생은 인생을 속여야 하고, 또한 인생은 인생으로부터 속아 넘어간다. 그것이 인생의 조건이다.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인간이 사용하고 있다는 현실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능력과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과 이러한 현실이야말로 인생을 농락하는 기만이며 환산이다.(115쪽)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의 자극에 대답하는 것이며, 책장을 넘긴다는 것은 자극에 반응하는 것뿐이다. 오늘날의 학자는 지난 세기의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을 긍정하거나, 또는 부정하는 데 그친다. 이미 자신의 생각은 오래전에 소실되었다. (176
쪽)
인간을 강자와 약자로 나누는 기준은 그가 무엇을 창조했느냐에 달렸다. 창조하는 자가 강한 자다. 남이 창조한 것을 자기 송처럼 이용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약자이며, 그런 자들을 우리는 오례라 지칭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권력의 노예가 아니다, 허무와 나태의 노예들이다. 이미 창조딘 세계에 적응하려는 나태야 말로 허무주의의 근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무주의는 노예적 정신이다.(192-193쪽)
만일 결혼이 동거를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행복한 결혼은 더욱 많았을 것이다. 가장 아름ㄷ다운 사랑도 야간은 쓰다.(217쪽)
어떤 면에서 나는 나의 아버지에 불과하다. 나의 삶은 그의 삶의 지속인 것이다(220쪽)
내가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우울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내가 삶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거짓말이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우울해진 것은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삶 때문이다.
이것이 다만 삶ㅇ이다. 그대는 의미을 배우면 그만이다. 그대의 삶을 이해하라(240쪽)
만용은 가장 뛰어난 살인자다. 그의 공격은 승리의 메아리다. 인간은 가장 용감한 동물이엇다. 그래서 그는 모든 동물을 정복했다(248쪽)
"이것이 그대가 말하는 인생이었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2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