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살기 위하여 | 정희성

해아심이 2015. 3. 30. 09:49

이 곳에 살기 위하여

 

                                  정 희 성

 

한 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는 소용이 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 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은 안다

이 곳에 살기 위해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싸우다 죽은 나의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

누구는 소용 없는 일이라지만

봄이 오기 전에는 나는

얼음을 꺼야 한다

누구는 소용 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을 증오한다.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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