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생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3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중에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얼굴 | 맹문재  (0) 2018.07.10
옹이 | 류시화  (0) 2018.05.29
위험 | 엘리자베스 아펠  (0) 2018.02.20
모든 진리를 가지고 나에게 오지 말라 | 올라브 H.하우게  (0) 2018.02.20
사막 | 오르텅스 블루  (0) 2018.02.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