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양광모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따뜻한 일인가

 

팔짱을 끼고 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다ㅡㄴ 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바람은 불고

꽃은 지고

지구는 빠르게 도는데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고마웠노라 행복했노라

이 세상의 일 마치고 떠라는 날

작별의 인사 뜨겁게 나눌 사람 있다면

그의 인생은 또 얼마나 눈부신 동행인가

소나무

                            양광모

 

겹겹이 터지고 갈라진

저 껍질 속에

오래 이 민족을 먹여 살린

누런 소 한 마리가 들어앉아

사시사철 푸른 쟁기질을 멈추지 않는데

누군가라도 알아주기를 바랄 때는

솔방울 툭 툭 발가에 떨어뜨리는 것이니

그런 날에는 가던 걸음 멈추고 다가가

굽은 등짝 한 번 슬며시 쓰다듬어 줄 일이다

 

고드름

                                             양광모

 

거꾸로 매달려 키우는 저 것이

꿈이건 사랑이건

한 번은 땅에

닿아 보겠다는 뜨거운 몸짓인데

 

물도 뜻을 품으면

날이 선다는 것

때로는 추락이

비상이라는 것

누군가의 땅이

누군가에게는 하늘이라는 것

 

겨울에 태어나야

눈부신 생명도 있다는 것

거꾸로 피어나는 저 것이

겨울꽃이라는 것

어떤 사랑은 눈사람 같아 

                                                  양광모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랑은 겨울 같고

어떤 사랑은 눈사람 같아

 

함께 끝나기 전에는

먼저 끝내지 못하니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은 그림자

                              양광모

 

사랑은

그림자라는 말

믿네

 

언제나

그대 생각에

잠겨 있는

 

나의 사랑은

물그림자

 

사랑한다면

                                          양광모

 

산을 좋아한다면

바다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바다를 좋아한다면

산이 가로막아도 뚫고 지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마음

여름 매미가 겨울 눈사람을

사랑한다고 노래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

 

사랑한다면

기억하여라

 

이루지 못한 사랑이란

지키지 못한 사랑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섬이 바다를 사랑하여

                                        양광모

 

섬이

바다 밑에서 불쑥 솟아올랐다거나

바다 아래로 서서히 가라 앉았다는

말 믿을 수 없지

 

한번쯤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어

 

저 아득한 공중에서

섬이 온몸으로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는 것쯤

 

저기 바다가 섬을 어루만지는  것

좀 봐

 

내가 한 송이 꽃이라면

                                             양광모

 

내가 한 송이 꽃이라면

눈을 즐겁게 만드는 꽃이 아니라

마음을 맑게 만들어 주는 꽃이기를

 

화려한 꽃잎이 아니라

그윽한 향기를 지닌 꽃이기를

키가 크지는 않더라도

높고 멀리 향기를 뿜는 꽃이기를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숙이기 전까지

눈에 띄지 않더라도

마침내 한 사람의 영혼을

일생동안 사로잡는 꽃이기를

600

 

아들아, 너는 별이 되어라

                                             양광모

 

(생략)

 

아들아, 이제 어깨를 펴라

사람들은 인생을 사계절과 같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인생이란 겨울과 같단다

아름답게 내리는 흰 눈을 바라보며 즐거움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이란 아주 짦은 법이지

인생이란 시간의 대부분은

찬 겨울바람에 몸을 떨며

겹겹이 쌓인 눈을 힘겹게 치우고

오래도록 눈길을 헤치며 걸어가야 하는 일이란다. 

 

(후략)

 

가슴에 강물처럼 흐르는 것들이 있다

 

                                                                    양광모

 

세월 흐른 뒤에야

가슴에 꽃으로 피어나는 것들 있다

 

세월 흐른 뒤에야

가슴에 촛불을 밝히는 것들이 있다

 

때로는 

안개로 밀려오고

 

때로는

낙엽으로 떨어지고

 

때로는 

눈처럼 쌓이면서

 

세월 흐른 뒤에야

가슴에 강물처럼 흐르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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