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양광모

 

길을 걸어가는데

돌이 가로막고 있다면

잠시 그 위에 앉아 쉬었다 가면 되리

 

마차를 타고 가는데

돌이 가로막고 있다면

마땅히 그 돌을 치우거나 피해가야 하리

 

인연이란 이와 같은 것

선연과 악연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돌을 탓하지 말고 나를 돌아봐야 하리

밥향

                                      양광모

 

꽃향은 손에 퍼지고

술향은 입에 퍼지지만

밥향은 가슴에 퍼지네

 

꽃향은 눈을 적시고

술향은 입술을 적시지만

밥향은 마음을 적시네

 

꽃향기에 취해 한 시절

술향기에 취해 한 시절

밥향기에 취해 한 평생

 

꽃향은 사랑을 부르고

술향은 친구를 부르지만

밥향은 어머니를 부르네

 

꽃향은 아름당운 동화

술향은 먼 나라의 왕궁

밥향은 고향의 느티나무

 

꽃이여 너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술이여 너는 얼마나 뜨거운가

밥이여 너는 얼마나 눈물겨운가

 

다시 태어나거든 밥이나 되자

꽃도 말고 술도 말고

거짓 없는 아이 주린 배를 채워 줄

한 그릇 따뜻한 밥이나 되자

나의 눈물로 그대의 발을

                                                      양광모

 

그대와 나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장미꽃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선인장의 가시를 지니고 있어도

온몸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피가

우리 영혼의 뿌리를 

어느 때고 가물지 않도록 적셔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의 눈물로 그대의 발을 씻기나니

그대와 나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빛을 받을수록

더욱 반짝이는 보석이 아니라

우리가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빛나는 별이기 때문입니다

 

봄편지

                                양광모

 

그의 이름ㅇ을 부르면

마음에 봄이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

그대여 꽃을 부르듯

너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사랑은 따뜻하여라

 

이번 생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지만

 

이번 생에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네가 보고 싶어

빗방울처럼 나는 울었다

 

네가 보고 싶어

낙엽처럼 나는 울었다

 

어는 봄날 꽃 피는 길 위에서 마주치더라도

그간의 안부는 묻지 마라

 

네가 보고싶어

눈송이처럼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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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사랑

                           양광모

 

  예를 들어 12월 31일 눈 내리는 밤이라 하자 어느 한적한

간이역에서 동쪽바다로 향하는 환승열차를 기다릴 적에 문득

한 여인의 맑은 눈빛에 마음을 뺏겼다고 하자 운명이리라 떠나야 

할 기차에 몸을 싣지 못하였다고 하자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

기도 전에 그 여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하자 그 밤내

겨울 창밖 말없이 지켜보며 홀로 서 있던 사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것을 늦사랑이라 불러도 좋은 것이다 어떤 사랑은

너무 짧기에 어떤 사랑은 이별 뒤에야 찾아오기에

엇사랑

                                   양광모

 

꽆이 져야 잎이 피어나는

하얀 목련 같은 사랑

 

사랑을 위해 사랑을 버려야 하는

엇갈린 운명 같은 사랑

 

한 사람의 천국을 위해

한 사람은 지옥으로 걸어가야 하는 사랑

 

그대가 

네게 남겨준 사랑

그리움이란

                              양광모

 

그리움이란

7월 연꽃잎에 고이는 

빗방울 같은 것

 

사랑할 땐 비워내도

다시 차오르지만

 

이별 후엔 차오르면

다시 비워내네

 

내 가슴속 연꽃잎

오늘도 파르르 빗방울 떨구는데

 

네가 떠난 후

여름비는 멈추질 않네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양광모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한여름 폭우되어 너를 만나리

번쩍번쩍 손길에 번개 이끌고

우르릉우르릉 발길에 심장 울리며

그치지 않는 장마 되어 너를 찾으리

밤이고 낮이고 쉬임 없어서

잠깐은 멈췄으면 싶어도 질 때까지

 

사랑이란

가슴을 적시는 게 아니라

가슴이 잠겨버리는 것이다

 

사랑이란 또 한가슴

잠겨버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양광모

 

사람은

하루에 오만 가지 생각을 하지만

 

사랑은

하루에 단 한 사람만을 생각하는 것

 

그렇지! 사랑이란

단 한 사람에 대해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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