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비단 궁전 / 오암(鰲巖)대사
山中秋正好 [산중추정호]
木葉間靑紅 [목엽간청홍]
醉面霑疎雨 [취면점소우]
衰빈刷晩風 [쇠빈쇄만풍]
誰懸雲錦帳 [수현운금장]
人在紫羅宮 [인재자라궁]
絶勝春花色 [절승춘화색]
神功賴化翁 [신공뢰화옹]
산 속은 가을이 정히 좋아
푸르름 붉음이 반반인 나무
취한 낯을 가랑비가 적시고
쇠잔한 귀밑머리에 늦바람 날린다
누가 그믐 비단 장막을 드리워
사람들 붉은 비단 궁전에 있네
봄 꽃의 색깔보다도 뛰어난 계절
이 신통한 공력은 조화옹이 빌린 것이지
위 시는 오암(鰲巖)대사의 시이다.
제목은 ‘가을 잎(秋葉)’이라 제한 시이다.
가을 잎은 단풍으로 대표되는 것이고
이는 주변에 널려있는 소재이기에
누구에게나 흔하게 선택되는 제목이다.
더구나 산사가 일상의 거처인
스님들에게야 더더욱 흔한 소재이다.
그러나 아무리 흔한 소재라 하더라도 흔한 느낌이
안 들도록 표현하는 것이 시인의 묘수인 것이다.
그것은 단풍이 고운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오히려 푸르름에 섞여 있는
붉음이 있어 더 붉어 보이는 것과 같다.
이 시에서도 이 점에 착안하여 시상을 이끌어냈다.
이점이 이 시를 시로서 어울리는
구성을 갖도록 하였다 하면 지나침일까.
성근 비인 가랑비나 해저녁의 늦바람이
꼭 가을이어서만이 어울리는 소재는 아니지만,
그러나 쓸쓸함으로 인상지워지는
가을의 시에 등장하기는 역시 격에 맞는 소재이다.
이러한 가랑비가 취한 낯을 적신다 했다.
이 취한 얼굴의 주인공은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산길을 걷는 나그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풍이 주소재가 된 이 시에서는
오히려 이 단풍 자체를 취한 얼굴로
대유한 것이라 할 수도 있으니, 이것이
오히려 시인의 의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고,
그래야 다음 댓구의 쇠잔한 귀밑머리가
단풍에 섞여 있는 나그네의 쓸쓸함을 보다
더 두드러지게 이해하는 바른 감상일 것이다.
이 비단 숲은 구름 비단의 장막이다.
누가 달았느냐는 의문을 제기했음은
다음 구의 신비성을 예비한 것이고,
이것은 바로 비단 궁전이다. 봄꽃보다도 아름답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결국 조화옹의 신령한 힘이다.
이 힘을 자연의 조화로 보는 것 또한
자연 추구의 진실된 자세이고, 이 자세가
선가에서의 선리 추구와 서로 연관이 있다 할 때,
선사의 선리적 시로 돋보이기도 한다.
- 그림 / 담원 김창배님 - 禪수묵화[가을소리 들으며]
- 음악 / 명상곡 - 그대 얼굴 가을 달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