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9  1판 9쇄, 도서출판 더숲


오랫만이다.

그의 글을 접하는 것이...

그가 말했듯 일상에서의 우리가 묻고, 답을 얻고자 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가볍지 않다.

그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느낌은 '잠언'이다.

번잡하지 않고 쉽게 다가오는 잠언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책들이 들어 있고,

이야기를 더 깊게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 책들에게 다가가는

또 다른 이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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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해답은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4쪽)


인간은 본질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이다. 공간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의 이동,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도 길이다.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고 하는데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방황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찾아 나서는 존재를 가리킨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구도 여정 자체를 '길(도)'라 했다. 호모 비아토르는 길 위에 있을 때 아름답다.(44쪽)


우리가 장소에 대해 실망하는 것은 아직 그 장소가 가진 혼에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슴을 그 곳에 갖다 대지 않은 것이다. 아직 자신과 그 장소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신전 문의 현펀에 적힌 '이 곳에 들어오려면 머리를 바쳐야 한다'는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107쪽)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도 그 이야기 실력을 능가할 수 없다. 마음이 지어내는 이야기는 어떤 소설, 어떤 신화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의식을 지배할 때 눈 앞의 현실보다 가공의 세계가 더 생생한 현실이 된다. 그때 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버스에 앉아 망상에 빠진 사람처럼 삶의 표면을 그림자처럼 지나갈 뿐이다. 마음은 매우 쉽게 우리를 충실한 하인으로 만든다. 그러나 마음만큼 형편없는 주인도 없어서, 지금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실제보다 상상에 더 많이 고통받게 만든다(117쪽)


우리는 첫번째 화살에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익숙하지만, 두번째 화살을 다루는 데는 매우 서툴다. 칼루 린포체는 말한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증오에서 나 자신이 해당되는 일이다'(137쪽)

(첫번째 화살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두 번째 화살은 그 사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다. -134~135쪽)


시인 루미는 말했다

'세상은 산이다. 당신이 말하는 것마다 당신에게로 메아리쳐 돌아올 것이다. '나는 멋지게 노래했는데 산이 괴상한 목소리로 메아리쳤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불가능하다' (168쪽)


영적인 깨어남이란 새로운 각도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삶을 원하고 새로운 장소를 갈구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새로운 눈이다. 관념은 우리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무엇보다 경이로움을 빼앗는다. 눈앞의 사람과 사물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게 되고, 놀라워하지 않고 감동하지 않게 도니다. 합리적인 머리만 작동할 뿐 직관적인 가슴이 기능을 멈춘다.

어느 순간 세상이 빛을 일었다면 시인의 눈으로 바라볼 일이다. 인생의 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얼마나 많이 느끼고 감동하며 살았는가'이가. 시인은 평범한 자두 열매에도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말했다.(192-193쪽)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전에 놓아 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 버려야 한다. 그 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뉴욕 어느 서점의 유리에 붙어 있던 작자 미상의 글귀 하나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나무족에 앚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204쪽)


'길일이나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늘이 바로 그 일을 하기에 길일'이라고 말해 온 것입니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224쪽)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생명들을 우니른 먹는가. 우리와 똑같이 살아 있기를 원하고 행복을 갈망하는 생명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 삶을 잘 사는 것만이 그 생명들에 값하는 길이다. 그들이 어느 날 꿈속에서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자신들의 수 많은 희생에 값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232쪽)


부서지고 깨어졌을 때 자신에게 남은 것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다시 창조하는 것만큼 위대한 예술은 없다. 부서진 가슴은 열린 가슴이다. 부서졌을 때 밝은 쪽으로 향하는 본능이 영혼의 복원력이고 영성이다. 우리는 상처때문에 불완전한 인간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결과로 온전한 인간을 향해 간다.

[불완전함의 영성]의 저자 어니스트 커츠는 썼다

'우리의 부서짐이 우리를 온전한 존재로 이끈다. '부서진 마음을 가진 사람만큼 온전한 이는 없다'고 사소브의 랍비 모세 라이브는 말했다. '온전함'이라는 말이 '부서지지'않은 마음, 즉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244쪽)


'나-너'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고, '나-그것'의 관계는 쓸모의 관계이다. '나-너'의 관계는 상대방을 현존하도록 만들지만, '나-그것'의 관계는 눈앞에 있는데도 상대방을 유령처럼 만든다.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기능일 뿐이지 '그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는 너라는 의마가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용도'라는 의미일 뿐이다. 나에게 불필요한 너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렇게 됨으로써 나 역시 너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257쪽)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스스로를 무시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가슴이 원하는 여행을 하지 않은 것만큼 큰 실수는 없다. 남의 기준에 맞추고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에 의문없이 따름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경험했을 더 많은 기쁨들을 스스로 놓쳐 버린 것이다(263쪽)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는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인 메리 올리버는 묻는다. '당신은 단지 조금 숨을 쉬면서 그것을 삶이라 부르는가?'

숨 막히게 사랑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숨 막히게 몰입한 순간, 삶과 숨 막히게 접촉한 순간이, 그것이 꼭 거창한 순간일 필요는 없다(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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