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66쪽)

 

엎어 두었던 

빈 독을 바로 세웠다

 

빈 독에 거꾸로 박혀 

노래를 불렀다

 

대자리 안쪽

어슬하고 부드러운 매혹을

 

옹관을

 

속 궁근 약속을 슬고 간 껍데기 거미를

마른 행주로 쓸었다

 

다시 엎어 세웠다

 

어둑서니 같은

응달거미나 이따금 드나들

 

우산이 있는 풍경(94쪽)

 

지금은

아랫집 할머니가

노인 요양보호 시설에 가는 시간

 

그 승합차가 방금 떠났다

 

비 온다

 

할머니의 어린 손자와 학교를 가는

턱없이 크고 검은 박쥐우산

 

길을 따라 떠내려가는 우산들

 

비좁은 사진틀 안에서 북적거리는

소리 없이 모여 웃는 사람들처럼

 

조금씩 멀어져 간다

 

우리는

누군가 세워두고 간 거리 풍경과

날마다 새로 작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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