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판 2쇄, 2017.2.27, (2018.1.22 알라딘 구매), 김영사
난, 우리것이 더 끌린다. 그래서, 국악에 대한 관심도 많고 공연도 보러 다니기도 했다.
같이 국악공연을 보러 가자고 하는 제안에 선뜻 같이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참 이상하다. 국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것을 대할 때는 이국의 예술들을 접할 때 보다는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다.
아직, 그들의 문화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이럴 때, 우연히 손철주 교수의 책을 접했다.
알고 보니 처음은 아니다. 벌써 몇 년전에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보았고, 이 책이 그의 책임을
다시 알았기 때문이다.
무심코 보아 왔던 옛 그림 속에 녹아 있는 음악을 느끼면서
참 우리의 것들은 같이 어우러지는 이런 멋드러움이 있어 하는
감흥을 새롭게 느꼈다.
그의 책들을 더 당겨보고 싶어졌다.
이 책의 세 부류(은일, 아집, 풍류)중에서 그래도 나의 정서에 가장 와 닿는 부분은
역시 풍류이다. 우리 삶의 일면을 보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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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면 어울리고,
어울리면 흥겹고
흥겨우면 술술 풀린다 (5쪽)
악(樂)이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것이요, 허(虛)에서 발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게 하여 혈맥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케 한다. (21쪽, 주역)
<예기>의 <악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악은 같음을 추구하고, 예는 다름을 추구한다'
......
음악은 같음을 추구합니다. 왜 같음을 추구합니까? 상친(相親)입니다. 서로 친해지려고 같음을 추구하는 겁니다. 서로 친해지는 것이 음악입니다. 반면 예에서는 다름이고, 상경(相敬)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공경함이 예입니다. (58쪽)
<악기>에서는 예를 떠난 악이 없고, 악을 떠나서 예가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바로 예악 사상입니다. 우리가 국악을 들으면서 떠올려야 할 것은, 지나친 즐거움이 아니라 절제된 예입니다.(59쪽)
굴원의 '어부사'
이보게나,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들랑 내 발을 씻으면 그만이지.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지수탁헤 가이탁오족
滄浪之水淸兮 可以濁吾纓, 滄浪之濁淸兮 可以濁吾足 (96쪽)
네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게 소통이 아니라, 내가 너를 알 수 없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곧 소통입니다 (129쪽)
취향에는 시비를 붙이면 안됩니다.
안목은 얼마든지 시시비비가 가능합니다. 옛사람들은 음악이든 미술이든 대안목이 되기 위해서는 금강안과 혹리수(酷吏手)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금강안'이란 무엇입니까? 옳고 그름을 가리고 아름답고 추함을 단번에 알아내는 눈을 말합니다. (.....)
혹리수는 혹독한 세리의 손을 말합니다. 아무거나 설렁설렁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기준에 따라 치밀하게 파헤치는 손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에 세금쟁이만큼 혹독한 손이 없지요.
그것이 안목을 키우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냥 길러지지 않습니다. 취향이 축적된다고 해서 저절로 안목이 되는 건 아닙니다.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지독하게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하지 않고 높은 안목의 경지에 올라선다? 턱없는 소리입니다. 절대로 안되는 일이지요(197-198쪽)
작품을 봐도 이렇게 포를 뜨듯이, 하나하나 찢어발기듯이 헤집어 봐야, 그 그림이 정말 가지고 있는 궁극적 가치와 때로는 뜻 밖의 메시지를 알아 먹을 수 있습니다 (....) 그 순간 그 앎이 주는 충격에 모공의 털이 바짝 서는 전율을 느끼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카타르시스죠.(216쪽)
술의 별명과 차의 별명이 있습니다. 술은 망우물(忘憂物), 즉 근심을 잊게 해 주는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 차는 해번자(解煩子) 즉 번뇌를 풀어주는 귀공자라고 했습니다.
........
차에 담겨 있는 풍류를 한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혼자 마시는 차에 이름이 있습니다. 술은 혼자 마시면 뭐라고 하죠? 독작(獨酌)이죠. 그런데 차는 혼자 마실 때 뭐라고 그러느냐, 이속(離俗)이라고 합니다. 떠날이에 속될속. 둘이 술 마시는 건 대작(對酌)입니다. 둘이 마시는 건 한적(閑寂)이라고 했습니다. 한가로울 한에 적막할 적. ....
그러면 세명이 술 마시는 건 뭐겠습니까? 셋이 마시는 술을 일컬어서 품배(品杯)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셋이 마시는 차는 이름이 뭐겠습니까? 차를 셋이 마시면 흔히 '유쾌'라고 한다는데 이미 고요한 차맛은 사라지는 겁니다 이 이상 더 모여서 마시면 속되게 되어버린다는 것이 차의 세계라고들 합니다. (227-228쪽)
낙이불음'樂而不淫' 이라, 풍류를 즐기더라도 지나치면 패가망신에 이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231쪽)
* 낙이불음, 애이불상(哀而不傷) -공자
'우리 것이 왜 좋으냐? 왜 우리 가락이 좋고, 우리 소리가 좋고, 우리 그림이 좋고... 왜 좋으냐?'라고 물으면, 저는 다산 선생의 시 한 수로 답해 보겠습니다.
백가지 꽃을 꺽어다 봤지만 折取百花看
우리집의 꽃보다 못하더라 不如吾家花
꽃의 품종이 달라서가 아니라 也非花品別
우리집에 있는 꽃이라서 그렇다네 秪是在吾家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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