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판 5쇄, 2007.11.30, (주)이학사
책을 산 지 10년만에 읽다니 참으로 무심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책갈피가 첫 몇페이지 다음에 꼽혀 있었던 것을 보면
읽으려다가 둔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자그마치 10년의 세월이라니..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흐른다고.. 그러니 그 시간들이 짧은 순간임을 느꼈을까?
시간의 간격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할까?
10년의 세월을 간직한 책을 다시 읽으면서 느꼈던 순간의 느낌이다.
저자 강신주의 많은 책들을 읽어서 그의 책 풀이를 어느정도 판단할 수 있듯이
이 책 또한 그의 특이한 필체로 쉽게 순순히 이끌려 들어가도록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질문을 살그머니 던져 놓고, 그 질문을 뒷받침하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거기에서 하나의 실마리와 질문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여 결론의 문 앞에 서게 한다.
철학 만만하지는 않지만, 삶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없다는..
그러면서 삶속에서 우리가 철학하도록 하는 그 노력은
낯설게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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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것에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처럼,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3쪽)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event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입니다.(23쪽)
'이성'이란 말은 영어 'reason'을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영한사전을 넘겨보면 이 단어는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으로 설명됩니다. 하나는 방금 살펴본 것처럼 '이성'이고, 다른 하나는 '이유'나 '근거'라는 뜻입니다. 이 점에서 '이성'이란 말은 '이유나 근거를 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주장에 대해 '모든 사람은 죽는다'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와 같은 근거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성의 힘이라는 것입니다.(57쪽)
철학은 '지금-여기'를 비판적으로 다루지만, 또한 동시에 '아직은 없는' 세계를 꿈꾸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여기'를 문제 삼기보다 여러모로 정당화하기에만 급급한 제도권의 철학, 혹은 '지금-여기'를 전혀 숙고하지 않고, '아직은 없는' 세계만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철학, 이 모두가 거짓된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72쪽)
길道은 걸어가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장자]<제물론> (105쪽)
필연성의 철학과 우발성의 철학! 이것은 은밀하지만 매우 전혀
ㅇ적인 철학의 두 가지 경향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앞으로 과거의 철학자들을 읽어나갈 때, 혹은 여러분의 삶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입니다.(106쪽)
바우디는 '사랑'을 '둘 the two'로 정의 내립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남녀에게는 '하나'를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선언한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은 사랑하는 당사자 두사람을 제외한 일체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129쪽)
중요한 것은 통치자가 이미 피통치자가 자신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로 부터 국가의 교환논리는 기본적으로는 우월한 힘을 가진 통치자와 그렇지 못한 피통치자에서 이루어지는 부등가교환이 됩니다. 다만 '국가는 더 많이 그리고 계속해서 수탈하기 위해 재분배하는 것일 뿐입니다' (148쪽)
맑스는 자본주의 시대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라고 정의했던 것입니다. 그의 말을 단순한 은유로 받아들이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사실에 대한 직시이기 때문입니다. (178쪽)
돈을 금고 속에 넣어두기만 하는 행위는 그다지 현명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맑스는 구두쇠, 즉 화폐퇴장자를 얼빠진 자본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왜 구두쇠는 얼빠진 자본가에 지나지 않을까요? 여기은 우리는 자본주의의 두 번째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본의 증식이 단지 유통 과정을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화폐를 가진 사람이 상품을 가진 사람보다 우월한 자리를 점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우월한 자리는 상품과 화폐가 지속적으로 교환되는 유통의 과정을 통해서만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맑스는 '자본으로서의 화례의 유통은 유통 그 자체가 곧 목적'이라고 지적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치의 증식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이 운동(유통)의 내부에서만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177-178쪽)
베르그손이란 철학자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봅시다 '없음은 있음보다 하나가 더 있다'는 그의 난해해 보이는 주장은 집착의 본질을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214쪽)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된 대상의 관념 속에는, 같은 대상이 '존재한다'고 생각되었을 때의 관념보다 더 적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따.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대상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대상의 관념에 더하여, 다른 것에 의해 그 대상이 없어졌다는 표상까지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215쪽)
결국 '없음' 혹은 '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기억하거나 기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6쪽)
어떤 구체적인 외적 강요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간섭과 강요의 흔적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주체가 되려고 할 때, 외적인 간섭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체란 내면화된 공동체의 규칙, 즉 초자아를 거부할 수 있을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50-251쪽)
도덕이 본래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을 갖추게 되는가'이다. 우리는 자신이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며,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어느 정도의 행복을 누리게 될 거서이라고 희망하지만, 이런 희망은 오직 도덕에 종교가 첨가되는 경우에만 비로소 가능하다.<칸트- 순수이성비판> (256쪽)
보통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행동을 노동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행동을 놀이라고 부릅니다. 노동의 경우 행복은 목적을 달성했을 때에만 찾아옵니다. (261쪽)
호이징하 덕분에 이제 우리는 자유가 근본적으로 행복과 즐거움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단과 목적의 일치만이 이런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점도 그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진정한 주체는 자유로운 주체여야 하지만, 또한 동시에 즐거운 주체이기도 해야 합니다 주체가 즐겁지 않다는 것은 모순된 표현에 불과한 것이니까요(262-263쪽)
니체는 '법칙에 대한 증오'를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운명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니체의 운명애는 영원회귀라는 그의 개념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원회귀라는 말은 말 그대로 영원히 반복되는 시계와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과 세계는 주기적으로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이지요.
.....
그래서 니체는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했던 '운명애'의 내용입니다. (264-265쪽)
참으로 사랑은 하나의 비약이자 축복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자, 남모르던 타인이 나의 손을 잡아주는 경험이니까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 타인은 나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검푸른 바다에 가로막힌 섬과 섬이 만나는 기적처럼 하나의 놀라운 사건, 어떤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사건입니다. 고독, 설렘, 지약, 기적등이 없다면 사랑은 이미 죽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70-271쪽)
우리가 자신의 삶을 낯설게 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자신이 지금 넘어져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자신이 넘어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에는 분명 우리의 삶을 낯설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 결국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철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으지'의 문제일 것입니다. (301쪽)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최종적인 결말은 죽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을 것인데, 왜 우리는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분명히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직선의 모슴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항상 새로운 사건과 마주치고, 우리의 경로는 예상치 못한 일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우리의 삶은 거미가 이동하는 것을 닮아 있다고도 말할 수 있씁니다. 항상 우발성에 노출되어 있고, 항상 낯선 사건과 마주치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우리의 삶은 자신의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불행한 일로 보이겠지만, 우리는 이것이 우리 삶에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떤 수 많은 사건이 여러분의 삶을 다채롭고 특이하게 물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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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그 종착역이 아니라 그 곳까지 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단숨에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우리가 오늘 다시 힘차게 일어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02-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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