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판 3쇄, 20190411, (주)문학동네, 김훈, 마샘북상상, 20200327~20200407 讀
알림에서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밝혔다.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등, 스쳐지나가는 것등,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
그래서 이 산문집은 일상적인 생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 2편의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의 내용은 우리들의 삶에 대한 내용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다.
물론, 그 할매와 나의 삶이 같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살아가는 자세와 살아가면서 생기는 고난등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그의 일생을 같이 하는 '연필'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70의 세월이 묻어 있는 잔잔함들이다.
나의 70의 세월에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때 나와 같이 생을 같이 한 도구는 무엇일까?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그 시기에 돌아보는 오늘의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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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빈소에서 여러 죽음을 조문하면서도 나는 죽음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다.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 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71쪽)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왜 소중한가. 그것은 영양가 있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섭생적 의미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활을 사랑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심성이 인격 안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재료를 다듬고, 섞고, 불의 온도를 맞추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간도 함께 익어간다. 우리의 선대 어머니들이 전쟁과 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그 가난한 음식을 기어코 손수 만들어서 자식을 먹인 마음을 우리가 다소나마 이어받아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것은, 경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상상력이 작동되어야 한다. 이 맛과 저 맛을 섞어서 제 3의 맛을 만들어 낼 때, 먹어보지 않은 맛을 미리 상상하는 정신의 힘이 작동되므로 요리는 마음의 힘을 키워 준다고(79-80쪽)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은, 사랑이 사그라진 자리에 연민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 빚쟁이처럼 사람을 내 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83-84쪽)
연애는 정치 슬로건보다 확실한 미래다(152쪽)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 (262-278쪽)
공은 둥긍어서 만인의 것이고 누구의 것도 아니다. (359쪽)
공은 스스로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충격을 수용한다. 그래서 공은 거기에 와닿는 발길에 따라 무수한 질감과 방향성으로 새로 태어난다. 공은 그 충격에 저오학하고도 정직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공은 인간의 육체의 일부이며 육체와 육체 사이의 또다른 몸이고, 그 연결자이다. (360쪽)
맛은 관념이 아니라 관능으로 작동하고 관능은 감각으로써만 소통된다. 맛은 개념이 아니고 기호가 아니고 상징이 아니다. 맛은 인간과 자연의 직거래이다. 맛은 정의가 아니고 불의가 아니다. 인간은 맛을 통해서 자연에 사무치고 저 자신의 육체를 자각하게 되는데, 이때의 인간은 개인이며 또 공동체이다. 음식을 먹을 때, 맛은 혓바닥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인간의 마음은 맛이 사라져가는 목구멍의 안쪽을 따라간다. 개별적 인간의 목구멍으로 넘어간 맛이 공동체의 정서와 공동체의 독자성을 이룬다. (3875-386쪽)
"그 위를 걸어가는 자가 주인이다"라는 말은 '걸어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들렸고, '걸어갈 때문 주인이다'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오는 자도 주인이고 가는 자도 주인이어서 길 위에서는 누구나 주인이고 누구도 주인이 아니다. 오는 길과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돌아서면 가던길이 오는 길이다. 내가 너에게 달 때 너는 내가 너에게 온다라고 말한다. 길에서는 옴과 감이 다르지 않으므로 길에 주인 없음을 알 것이다.
'갈'이라는 모국어 단어는 길다고 해서 기이 된 모양인데, 길은 공간 속으로 길고, 시간 속으로 길다.
그러므로 신경준이 "길은 그 위를 걸어가는 자가 주인이다"라고 말했을 때의 주인은 미래의 길 위를 걸어갈 미래의 행자를 말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421-4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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