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20, 개정판1쇄, 천년의시작, 김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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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산정의 어떤 나무는 바람부는 쪽으로 모든 가지가 뻗어 있다.

근육과 뼈를 비틀어 제 몸에 바람을 새겨놓은 것이다. (13쪽)

 

특수상대성

 

빛의 속도에 이르면 시간이 느려지는데

우리의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을 넘는다

우리가 늙지 않는 이유이다 (15쪽)

 

 

늙은 겨울이 비슥이 누워 밭은 기침을 하는 도랑가에 

우주의 먼 길을 달려온 빛이

새 풀의 연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다 (22쪽)

 

 

내가 아는 만큼의 당신이 내 속에 격리된다

나는 당신을 가둔 감옥이다(35쪽)

 

보름달

 

혼자 소리치다 제 안을 얼마나 때렸으면

모든 밖에서 중심까지 안으로 눌러 삼킨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비명조차 저토록 둥글고 환해질 수 있을까 (49쪽)

 

 

눈으로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61쪽)

 

귀소

 

새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두고 온 제 무게를 그리워한다 (72쪽)

 

산정시선

 

걸어온 길 돌아보면 허공이 천지다

시선을 묽어지고

가두고 길들여 한 번도 풀어놓지 않았던 나를

먼 데로 산란한다

도피처럼 사랑했고 죽음처럼 절박했던 시간을

허공에 요약한다

어떤 그리움이 내부를 채운 뒤

살을 빠져나간 자리마다 수염은 자라

수심이 깊다

둥글게 등을 말고 태아처럼 앉아

어머니의 자궁을 추억한다

내 속의 계곡에 추락한 나를 인양하기 위해

멀고 긴 시선이 팔을 뻗어

잃어버린 꿈 하나를 만져본다 (75쪽)

 

노을

 

눈이 빨개지도록 울다 간 네 발소리로 가슴의 저녁이 물든다 (89쪽)

 

지각의 현상학

 

그립다는 말은 언어가 아니라 살이다(91쪽)

 

이유

 

바람이 불 때

꽃은 너무도 불안하여 그만 예뻐져 버렸다.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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