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본질은 강제적, 그리고 자발적으로 늘린 빚을 갚아 나가기 위해 허덕이는 과정에 있다. 삶에서 우리의 욕망이 이뤄질 때마다 내일의 삶은 밝혀지지 않은 가능성 하나를 상실한다. 욕망으로 점철된 이율의 등락이다. 오늘의 삶이 선명한 바퀴 자국이 되어 내일의 기억과 영혼이 걷게 될 길을 정해버린다. 이 또한 빚의 일종이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부채가 된다(44쪽)
처음부터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도 꽤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려봤던 사람은 그것들을 잃게 되었을 때 깨닫게 된다. 상실이라는 극단의 망각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46쪽)
수면이라는 본능을 받은 대가로 인간은 너무나 많은 것에 눈을 감아버린다. 더욱 편한 잠자리를 갖추기 위해 때로는 자발적으로 수면제와도 같은 금전적 유혹에 취해 버린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난하지 못하겠다..
(중략)
양심의 가책이라는 징계에서 자유로워지는 가장 빠른 처방은 반복해서 가책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지금의 가책이 이전의 가책을 밀어내고, 다음의 가책이 지금ㅇ의 가책을 덧칠해 가리는 기술은 꽤 유용하다.(57쪽)
지금 쓰고 있는 가면은 더없이 소중한 동시에 나를 옭아매는 매듭이다. 세상이 보고 싶어 하는 나의 가면이 진실한 내 모습보다 더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환희와 환멸의 경계를 오간다. 이런 가면을 쓰기까지 내가 바쳐왔던 인과 절제의 시간이 떠올라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게 될 때면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그리고 여지없이 환멸의 그림자에 취해 비틀거린다.
이것이 정말로 내가 원했던 삶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른 것인데 나는 왜 잠시의 배부름에 자족하여 소모되고 있는가(92쪽)
자격이 있다는 평가는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119쪽)
"세상에 병든 자만이 있는 것은 아니란다" '알아요. 아버지, 하지만 안 아플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나도 그랬고요"(120쪽)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단 하루를 살아도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142쪽)
최악의 악몽은 이루지 못한 꿈이 아니라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때였다.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걸 바라보며 두려움과 조급함 대신 다 이룬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나를 바라보는 것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무서운 꿈이었다(144쪽)
부끄럽게도 우리 세대의 삶이 이런 모습의 늙음 된 까닭은 베풀지 않아서다. 나누지 않고, 배려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늙어 버렸다(151쪽)
부부는 '1+1=2'가 되는 공식이 아니라 '1+1=1'이 되는 공식이다. 내가 가진 0.5를 상대에게 내어주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관계다(208쪽)
속도는 상대성이다. 나의 속도를 결정하는 기준은 체감이 아니라 내 옆을 지나는 타인의 속도다 그들이 나보다 빠르면 나는 느린 것이 되고, 그들이 나보다 느리다면 나는 빠른 편이 된다. 엇비슷하게 걷고 있다면 안심이다. 그들이 도착할 때쯤 대충 나도 도착한다는 계산이 마음을 안정시킨다(239쪽)
시점을 바꾸기만 하면 파도는 구름이 되고 추락은 비상이 된다. 펭귄은 물속에서, 차가운 북극의 해중에서 더 멀리 나아가는 길을 찾아냈다. 더 빨리 전진하는 법을 알아냈다.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다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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