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7쇄, 2008.12.9, 생각의 나무, 알라딘 중고구매, 20180509,20180515 讀


그의 다른 책들처럼 흥미로 다가섰다.

하지만, 다른 책들과는 달리 묵직하다.

아직은 바라볼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좁아서일까?

방대한 내용으로 흥미로만 대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나는 그림을 보며, 문학을 접하며, 음악을 들으며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그 작품이 나오기까지 있었던 무수한 이야기들을 어디까지 알려고 했을까?

제목은 '보는 만큼' 이라고 했지만,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아는 만큼'의 책을 벗어날 수 없다.

그 배경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림을 자세히 살피고 그 안에서 '보여진' 것들을 느끼고 이야기로 나아가는 것도

감상하는 이의 한 몫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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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건, 오스카 와일드가 비꼬았듯이 밥 먹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한 짓거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바깥에 보이는 사물에서 머릿속에 잇는 생각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8쪽)


감상자는 맹목적인 동일시에의 집착이 있습니다. 너와 내가 그림을 본 느낌이 일치했으면 하는 희망, 그리하여 공감이 주는

안도감을 누리고 싶은 욕구, 이런게 다 동일시에 대한 집작입니다. (10~11쪽)


풍속화는 삶의 풍경을 그린다. 아니, 풍경이 된 삶을 그린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바라보는 삶이다. 감상용 삶을 풍속화는 그린다. 누구에게나 삶은 절실한 고통과 짜릿한 쾌감이

동반하는 살이다. 그러나 삶이 풍경화될 때, 그 삶은 애환을 지워버린 객체가 된다. 풍경 속의 삶이 개인의 삶의 거죽을 뚫고 들어오기가

지난하다. 실감하는 풍속화가 드물다. 풍속화는 풍경으로서의 삶을 그리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삶의 피돌기를 자극함으로써

생명을 얻는 것이다. (34쪽)


문장의 뜻은 읽히면서 그려진다. 회화의 뜻은 보이면서 읽혀진다. (84쪽)


모든 공부와 이해는 오독과 편견에서 성취된다. 감상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모든 예술의 감상과 비평은 독단과 편애의 결과이다. (138쪽)


롤랑바르트의 [기호의 제국]에 이런 언급이 보인다.

"서양에서 거울은 본질적으로 나르시스적 대상이다. 사람이 거울에 대해 생각할 때는 거기서 자신을 보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러나 동양에서 거울은 공空인 것 같다. 그것은 텅 빈의 상징이다. 도인이 말하길 '정신은 거울과 같다. 거울은 아무것도

거머쥐지 않으며 아무석도 밀어내지 않는다. 받아 들이거나 간직하지 않는다'고 했다. 거울은 다른 거울만을 사로 잡는다"

(183쪽)


큰 사랑은 보듬는 것이 아니라 풀어주는 것이 아닐는지요(214쪽)


행크 판 오스 <열린 미술관>

그는 예술을 "어떤 대상에 대한 집중이자 그 대상 하나하나에 머무는 행위이며 그 대상의 존재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230쪽)

저자는 '찬찬히 살피고 주의 깊게 생각하기'를 독자의 으뜸 덕목으로 친다. (231쪽)


헤밍웨이 "상처 있는 영혼은 위험하다"

박수근 "티 없는 영혼은 설치지 않는다"

서위 "소외된 영혼은 자멸한다"

최북, 김명국 "말짱한 영혼은 가짜다"

이중섭, 반고흐 "흔들리는 영혼은 쉬고 쉽다" (246~252쪽)

    * 작가들에 대한 코멘트

아름다움은 그냥 오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아름'은 알음이자, 앓음이다. 앓지 않고 아는 아름다움은 없다.

혜곡이 그러했다. 알음을 아름답게 하려고 그는 앓았다. (260쪽)


옛 기록을 따라가면 '삭적(削迹)'이란 말이 나온다.

삭적은 '수레바퀴의 흔적을 지운다'는 뜻이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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