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中 (16쪽)
고독의 최소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사랑을 만난 후의 그리움에 비하면
이전의 감정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도
희망은 가볍게 잡아야 한다 中 (22쪽)
절박할수록 가만히 희망을 품는 법을 배워야 한다
희망은 숨을 쉬어야 하고 나무 위의 새처럼 스스로 노래해야 한다
(중략)
희망이 날아갔다가 언제든 다시 날아올 수 있도록
사방의 벽을 없애야 한다
그렇게 무한히 열려 있어야 한다.
나보다 오래 살 내 옷에게 中(38쪽)
내가 너를 입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행보과
실도 꿰지 않은 바늘로 뜯어진
감정의 솔기를 꿰매던 나를
너만은 기억하리
너를 두고 떠나는 나 역시 마음이 아프다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바람이 옷장 문을 열면 너도 수고로운 생 마치고
얽매임의 날실과 씨실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나는 낙타였나보다 中 (44쪽)
나는 낙타였나 보다
세상이 사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입술 하얗게 갈증 심할 뿐
이따금 발 헛디딘 것이 전부였는데
여기까지 와서 신발 벗어 보니 모래 가득하다
별 밟고 다닌 줄 알았는데
눈썹에 얹힌 후회의 먼지 해를 가리고
일부러 넘어진 건지 삶이 비탈진 건지
아무래도 나는 무르팍에 옹이 박힌
낙타였나 보다.
추분 中(58쪽)
4
저 풀벌레
울음에 목숨을 걸고
밤새 울어야만
마침내 벌레의 생과 작별할 수 있는 걸까
나흘 밤 동안 울다가 이내 고요해 졌다
내 안에 오래된 울음 하나가 살고 있다.
생각해 보았는가 中 (90쪽)
생각해 보았는가 백일홍이 한여름에
백 일 동안 꽃을 피우는 것은
그리움 때문이라고
낮달맞이꽃이 씨앗 속에서부터 공들여
흰색 섞은 분홍색을 준비하는 것도
태생적 그리움 때문이라고
수선화의 어린 싹이 미련없이
구근을 찢는 것도
틈 中 (91쪽)
씨앗은 틈새의 대가이다.
낮달맞이꽃 피어 있는 곳까지 中(158쪽)
안데스산에 사는 케추아족은
미래를 뒤쪽이라 부르고
과거를 앞쪽이라 부른다지
미래는 볼 수 없지만
과거는 볼 수 있기 때문이라지
나는 작별이 서툴다 中 (164쪽)
나는 작별이 서툴다
헤어지면서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람에 잎을 떠나보내는 나무처럼
그렇게 무심히 '잘 가'하고 말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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