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앞에 다가선 죽음이라는 그 장벽은

그동안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좀 더 깊은 생각이랄까?

삶에서도 충분히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말했던 "생사일로"인 현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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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때 느낀 마음의 위로는 얼마나 강렬했던지....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주님도 '근심'과 '번민'에 싸여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는데, 그렇다면 나의 고통과 두려움은 얼마나 당연한 것ㅇ인가.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제자들에게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고 한탄 하신 걸 보면 아아, 주님도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그래, 주님과 더불어 한시간만이라도 깨어 있자.  - 29쪽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은 '두메꽃'과는 정반대의 삶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가 아닌 수 많은 사람들로 들끓는 도시의 과장이었다. - 118쪽

  ※ 두메꽃 :https://blog.naver.com/jayouinn/223390486595

 

 

베르나데트는 정신없이 샘을 파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125쪽

 

루치아 수녀의 회고록을 보면,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은 뜻밖에도 가족들의 멸시와 박해였다. - 158쪽

 

'인생은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주고 싶어요. 하고 말하며 꽃이 죽는다'라고 노래했던 플로베르의 시처럼 꽃보다 아름다운 그대들이여, 꽃보다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하라. 그리고 마음껏 춤춰라. - 234쪽

 

경허는 깨닫고 나서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기다.

"세속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으냐. 봄볕 비추는 곳에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 258쪽

 

죽은 영정의 사진은 법정스님이 평생동안 빌려 쓴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 가면의 얼굴이 스님의 진면목은 아닌 것이다. 아니다. 법정이란 이름도 진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허명에 불과한 것이다. 

불교 최고의 고불이자 법정 스님이 존경하던 조주 스님은 일찍이 죽은 사람을 좇아가는 장례행렬을 보며 한탄하지 않았던가. 

"한 사람의 산 사람을 수많은 죽은 사람이 쫓아가고 있구나." - 262쪽

 

세 시간 이상 걸린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무렵 내가 "스님, 어느 책에선가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라고 법정스님이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 기억난다.

"실제로 죽음이 닥치면 어떨진 모르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무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새로운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확고해지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죽음을 받아 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사물을 보는 눈도 훨씬 깊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276~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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